'솟대' 모임 가야산 만물상 등산
파리 폭탄테러,광화문 집회, 국정교과서 반대집회와 지지집회 등
세계 구석구석, 나라 곳곳... 이 시대를 살아내고 견뎌내야 하는 몸짓들,
좀 가벼울 수도 있고, 더 적극적으로 처절한 정도의 차이는 있다.
생존의 質 향상과 자유의 확산을 통해 역사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기 위한 몸짓도 있고,
시대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기존의 관행이나 익숙한 편협한 틀에 사로 잡혀 사실상
역사의 발목을 잡는 몸짓들이 아직까지 함께 뒹구는 시절이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언론, 교육, 시인,도서관 운동 등 시민운동을 해 온 사람들,
이 시대 아픔을 온 몸으로 껴안으면서 살다보니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그랬던지 친목단체를 만들었었다.
이름하여" 솟대" 아무 목적없이 한번 씩 만나 인간임을 공유하던 모임.
결과적으로 자신의 전문영역인 '일'에서 지치고 힘든 마음을 풀고 거친 마음을 위로받고 치유가 되었던지
모임이 20년을 훌쩍 넘으면서 20-30대 젊은이들이 50-60의 나이가 되었다.
모처럼 모임 날을 잡았는데 비가왔고, 서울서 집회가 열리는 날이었지만 계획대로 모임 산행을 하기로 했다.
삶은 단련의 연속이기에...
사고가 많고 위험해서 20년 넘게 통제되어 오다가 탐방여건을 만들어 개방한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무릎이 의식되기도 하고 혹 산행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하면 민폐가 될까 싶어
다소 걱정이 되었다( 최근에는 500-600M 정도의 산행만 해 오던터라)
산행을 제안하신 선생님이 정면으로 올라가지 말고 보통 하산하는 쉬운 길로 올라가서
거꾸로 내려오면 별 무리가 없으리라 하여 참가를 해 보기로 했다.
운해 낀 가야산 만물상은 결코 그 장대한 모습을 호락호락 쉽게 보여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구름 속에 들었다가 나왔다가 하면서 얼핏얼핏 보여주는 대단한 광경들,
방금 앞 사람이 사진을 찍었는데 잠깐 사이 다시 들어가 버려서 사람을 안달나게 하기도 했지만
근육을 써서 땀흘려 걸은자만이 보고 누릴수 있는 눈의 호사는
진한 감동과 더불어 감탄사를 저절로 남발하게 했다.
금강산 이후로 그렇게 바위들로 이루어진 산은 보지 못한 것 같았고 여전히 자욱한 운해로 인해
구름위에서 우리는 잡다한 세상사 번민을 묻었다.
끊어진듯 끊어질듯 이어지던 길이었지만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디뎌 이어 붙이니
1138M의 서성재 목적지에 닿았고 상아덤, 1096봉을 거쳐 또 그렇게 하산을 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다.
(평소 산행을 하던 사람들이 아니어서 정상인 1433M라는 칠불봉이나 1430M의 상왕봉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애초 엄두가 안 났지만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 디뎌 이어붙이면서 산행을 마쳤듯
한 인생도 그렇게 그렇게 연결될 것이고, 한 시대가 그렇게 그렇게 이어지면서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개인이든, 시대든 간에...
'시간 여행의 기록 > 이웃지역 기타 경남 지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가, 남해 원예마을 예술정원 (0) | 2017.07.26 |
---|---|
남해 독일마을과 파독전시관 (0) | 2017.07.20 |
창녕에서 반 나절, 관룡사부터 (0) | 2017.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