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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남해 원예마을 예술정원

생게사부르 2017. 7. 26. 01:31

휴가, 남해 원예마을 예술정원

 

 

 

형제 여섯, 아들, 딸, 딸, 아들, 딸, 딸, 육남매  

아버지께서는 아들, 딸, 딸, 아들 2남 2녀로 끝냈다고 생각 했으나 어머니 생각은 달랐던 모양

옛날 시골에서 달랑 자매로 자라다 작은 외할머니까지 봐서 뒤늦게 남동생 하나를 두어 4대독자를 이었던 탓에

엄마는 늘 ' 내 죽고 나면 상여 뒤에 주렁주렁 따라 오게 할 것' 을 평소 노래로 삼으셨습니다.

부양은 아버지가 하지만 역시 자식을 출산 하는 건 여성마음에 달린 듯...

 

그렇게 여섯을 낳기만 했지 성장하는 거 옳게 보지도 못하고 설흔 아홉에 엄마는 돌아가셨고,

이제 막내도 사십 중반을 넘어 섰으니 우리형제는 돌아 가실 당시 엄마보다 많은 나이가 되었고

위 넷은 쉰 둘에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많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엄마 아버지 다 일찍 돌아가신 셈이니 우리형제들 살아 온 얘기도 쓰자면 소설 몇권 분량은 될 터이지요.

 

어떻든 아래 셋은 생활 근거지를 수도권에 두고 있고 위 셋은 마창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다 고만고만하게 산다고 정신이 없어서 최근에 와서야 일년에 한번 얼굴이라도 보자고 해서 여름휴가에 모이고

그간의 근황을 확인하는게 올해로 네해 째입니다.

남해에서 두번 모였고, 작년은 함양 인산가에서 올해는 산청 쪽에 숙소가 잡혔는데

휴가를 앞두고 이전 사진들을 들춰 보니 그 때 기억이 생생히 떠 오르네요.

 

요즘은 사진 찍기도 귀찮아서 눈에 넣고, 머릿속에 담기면 다행이고 안 담겨도 그만,

그 순간을 즐겁게 지내는 일에 충실한데, 이럴 땐 ' 역시 남는 건 사진' 이라는 말이 명답이기도 합니다 . 

 

 

 

 

찬 음료라도 한잔, 줄줄이 들어 서고 있는데 다섯째네 애들이나 따라 올까 더 이상 따라올 조카들이 없는데

맨 뒤에 남동생 아들이 이 때는 따라 왔네요. 영국에 있으니 올해는 못 올 테지만

한번씩 올 때마다 지 아빠와 번갈아 운전을 하고 와서 든든하더니...  

 

 

 

 

 

 

 

 

 

 

 

 

 

 

 

 

 

 

 

 

 

 

 

 

 

 

 

 

 

 

 

 

 

 

 

 

 

 

 

 

 

다섯째네 딸 들과 막내,

 

이 사진 보니 또 기억이 나네요.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 곳을 방문 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에 없는데 딸로는 셋째가 여기서 ' 내 백성들아 !!! '

잠시 ' 여왕놀이'를 했습니다. 안동하회마을에서는 여왕이 방문한 적이 있다는 기록을 본 것 같습니다만...

 

셋째는 자랄 때 부터 주변 여건을 자기에게 맞도록 바꾸는 특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공부에 취미가 없던 사람은  좀 재수 없는 얘기 일 수도 있는데

학습영역에도 적용이 되어 모든 걸 공부로 연결시키는 비상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지요.

 

형제가 많은 시절, 밥상에 둘러 앉아 먹는 밥은 참으로 생존 경쟁적이기도 하고  배려가 필요 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셋째는 밥상을 차리기 시작하면 바로 가정공부를 시작 했습니다. ' 쌀을 고를 때는 낱알이 맑고 쌀 눈이 어쩌고 ..

. 생선은 아가미가 붉은 저쩌고...' 시끄럽다. 밥 좀 먹자'고 핀잔을 주든 말든...

공부를 진심 그렇게 재미 있어 하는 아이는 흔치 않은데... 걔는 그랬습니다

당연 이모는 조카들 학창 시절 우상이었지요.

 

초등학교 때 공부학원은 가지 않았던 딸이 중학생이 되어 시험기간 다른 아이들이 학원서 내 준 프린트로

공부하는 걸 보고 부러웠는지 잠시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좀 나이 드신 학원강사가 ' 내가 이전에 학교에 근무할 때 좀 뚱뚱하고 못 생겼지만 정말 공부 하나는

비상하게 잘하는 아이가 있었다. 어쩌고...'  딸이 그 날 저녁 집에 와서 묻더군요.

 ' 엄마 ! 이모가 여고 다닌 때가 몇년도 쯤 되요. 오늘 학원 선생님이 얘기한 사람 아무래도 이모 같아요.

 그 정도로 뚱뚱하지는 않는데...

 

걔가 대학 진학하고 나서 책을 버리려고 정리하다가 중학교 시절 국사 노트를 하도 정리를 잘해 놨길래

내가 가져 왔는데 그 속에 중 고등학교 성적표가 들어 있었습니다.

학급등수든 전교등수든 600-700명 되는 인원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거의 없는 기념비적인 유물(?)이었는데

아쉽게도 내가 분실을 해 버렸네요.

 

유감스러운 건 딸 셋째 넷째가 같은 여고를 다녔다는 사실입니다.

정리 정돈을 잘하고 커피 한 잔을 타도 맛있게 타는 막내가 어린 시절,

' 언니 숙제 좀 봐 줄래? ' 하면 셋 째는 가르쳐 주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얼판 지가 해 줘 버릇...

고만고만하게 공부를 하는 막내와 고등학교 입학 할 때 연합고사 만점을 받고 들어간 제 언니가 같은 학교를 다녔으니

선생님들 왈, ' 니가 누구 동생이가?'

 

비교 당하며 생활 했을 여고시절이 짐작이 가지만 둘다 인성은 좋은 탓에 ' 언니는 공부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그러려니... 속 편히 마음 먹었고, 막내는 '막내니까' 하며 귀염을 받은 탓에 둘 사이는 여전히 좋습니다.

 

 

작년에는 막내가 수술을 해서, 올 초에는 동갑내기 외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위로 올라갔었는데

올해는 이장한 어머니, 아버지 산소를 둘러보고 지리산 쪽에서 재회를 하겠네요.

 

비록 부모님들은 일찍 돌아 가셨지만 그 분들이 주고 간 정신적 유산을 잘 이어 살아 온 탓에 육남매 전쟁터라면

전쟁터인 이 세상살이를 고만고만 꾸려가고 있습니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서로 챙기고 걱정하고 좋은 일 함께 기뻐하며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