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정록 시인의 말, 임영조 시학 강의

생게사부르 2018. 5. 27. 18:17

시인의 말/이정록

 

쓰는게 아니라
받아 모시는 거다
시는, 온몸으로 줍는거다

그 마음 하나로
감나무 밑을 서성거렸다
손가락질은 하지 않았다
바닥을 친 땡감의 상처, 그 진물에 펜을
찍었다
홍시 너머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사랑의 주소는 자주 바뀌었으나,
사랑의 본적은 늘 같은 자리였다

 

 

 

 

 

 

 

시학 강의/ 임영조

 

 

 

대학에 출강한 지 세 학기째다

 

강의라니! 내가 무얼 안다고?

'시창작기초' 두 시간

'시전공연습' 두 시간

나의 주업은 돈 안 되는 시업(詩業)이지만

강사는 호사스런 부업이다

매양 혀 짧은 소리로

자식 또래 후학들 앞에 선다는

자책이 수시로 나를 찌른다

―시란 무엇인가?

―생이 무엇인지는 알고?

나도 아직 잘은 모른다, 다만

삼십년 남짓 내가 겪은 황홀한 자학

그 아픈 체험을 솔직히 들려줄 뿐이다

누가 보면 딱하고 어림없는 짝사랑

설명하기 무엇한 상사몽 같은

그 내밀한 시학을 가르쳐줄 뿐이다

―시란 무엇인가?

―그건 알아서 뭐 하게!

그게 정 알고 싶으면 너 혼자

열심히 쓰면서 터득하라!

그게 바로 답이니……

오늘 강의 이만 끝.

 

 

 

    시집『귀로 웃는 집』(창작과 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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