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이정록
쓰는게 아니라
받아 모시는 거다
시는, 온몸으로 줍는거다
그 마음 하나로
감나무 밑을 서성거렸다
손가락질은 하지 않았다
바닥을 친 땡감의 상처, 그 진물에 펜을
찍었다
홍시 너머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사랑의 주소는 자주 바뀌었으나,
사랑의 본적은 늘 같은 자리였다
시학 강의/ 임영조
대학에 출강한 지 세 학기째다
강의라니! 내가 무얼 안다고?
'시창작기초' 두 시간
'시전공연습' 두 시간
나의 주업은 돈 안 되는 시업(詩業)이지만
강사는 호사스런 부업이다
매양 혀 짧은 소리로
자식 또래 후학들 앞에 선다는
자책이 수시로 나를 찌른다
―시란 무엇인가?
―생이 무엇인지는 알고?
나도 아직 잘은 모른다, 다만
삼십년 남짓 내가 겪은 황홀한 자학
그 아픈 체험을 솔직히 들려줄 뿐이다
누가 보면 딱하고 어림없는 짝사랑
설명하기 무엇한 상사몽 같은
그 내밀한 시학을 가르쳐줄 뿐이다
―시란 무엇인가?
―그건 알아서 뭐 하게!
그게 정 알고 싶으면 너 혼자
열심히 쓰면서 터득하라!
그게 바로 답이니……
오늘 강의 이만 끝.
시집『귀로 웃는 집』(창작과 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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