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전비담 꽃의 체온

생게사부르 2018. 5. 26. 13:57

꽃의 체온 / 전비담


겨우내 엠뷸런스가 울어서 그 병원에는
곧 떨어질 이름들만 피었다
영안실로 가는 침대의 난간을 움켜쥐고
절뚝이며 따라가는 얼굴처럼
하얗게 질려서

기어코 봄날 초입에
한주먹 틀어막은 울음이
툭, 떨어진다
이제는 저 혼자 복도를 걸어나갈 수 없는 것들이
군데군데 멍이 들거나 구멍이 뚫린 채로
하나씩 호명될 때마다
한 줌의 시든 수의로 기록되는,

목련! 하고 부르면
뚝,
뚝,
한웅큼의 하얀 종말이 뛰어내릴 때
찬란하게 하얀 것들에서는
포르말린의 체온이 풍긴다

꽃,
하고 입술 오므리면
죽음,
하고 휘어진 복도를
힘없이 돌아 나오는 메아리

건물 뒤편에서
시신을 말리는 냉각팬이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누가 저걸
죽은 꽃들의 누적된
향이 앓는 소리라 했나

목련 피는 소리 갸르릉거리는 밤에는
죽은 내 친구가 입 안 가득
덜 삭은 생을 물고 양치하는 소리 들리지

하얀 꽃색 버려두고
꽃향이 자꾸 내 뒤를 밟는 건
일찍 떠나 비릿해진
꽃의 체온 때문,




- 2013년 제8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