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연준 서른,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생게사부르 2018. 3. 24. 01:45

박연준


 서른


 

간장을 종지에 따르다
한방울 톡, 튀었는데
고 까만 점 속에서
내 서른이 피어났다

창문을 닫고 돌아서는 등뒤로
후드득 떨어지는 머리카락들
(너희들이 보았니?)
른,른,
서른
고백하려다 끝내 잊혀진 말들이
딱딱한 씨앗으로 세개

지난밤 내가 묻어 둔 꽃씨들이 보고 싶어
한밤중 잠든 화분 속을 헤집어 본다
다섯개였나, 여섯개였나
혹시 묻어 두었다고 착각 했었나?
어두운 과거를 핀셋으로 발라내며
이 곳은 피 한방울 없이도 생으로 가득차 있는데

기다려야 한다
가만히 방바닥에 앉아
기차가 왼쪽 귀로 들어와 오른 쪽 귀로
무사히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 보다는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 ! 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 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

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 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

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     *

 

 

한 인간의 삶, 긴 역사의 흐름속에서 자신이 태어난 시대적 상황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은 해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고, 유치원을 다니고, 같은 해 입학해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졸업하고, 군에 입대하고, 사회에 진출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비슷한 시기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고 ...

 

자신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 '이 형성되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여건이 그 기반에 깔립니다.

 

이전세대는 비슷한 시기에 입학하여 보내게되는 ' 학교교육과정' 과 학창시절의 사회화 과정이

지금보다 훨씬 획일적이어서 성장하고, ' 독립된 한 인간'으로 '삶의 한 주체'로 서게되기까지 시대상황과 특히

사고방식의 많은 부분이 '집단교육'의 영향을 그대로 고스란히 받고 자랄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유전자적인 개개 특성과 가정이나 부모님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에 영향 받는 건 case by case이고

비슷하게 주어진 환경이지만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독자적으로 재구성하는지에 따라 다른 인격이 형성되겠지만요.

 

한마디로 얘기하면 '박정희' 시대 '국민교육헌장'에 입각하여 성장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그 시절 학교교육을 받았고, 성장기 내내 대통령은 박정희였습니다.

대학 마칠 무렵 10. 26이 있었고, 또 이어서 전두환정권이 들어섰고요.

 

정치적 배경만으로는 군사독재 정치 시대를 겪었으니 최영미 시인 세대에 가깝고

박연준 시인은 제자뻘이고 조카뻘이네요. 물론 일찍 결혼 한 친구들 같으면 딸뻘이기도 하고요.

 

최영미 시인이 삼십 초반에 이 시집으로 일약 이름 있는 시인으로 뿌리 내리던 게 생각납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충분히 공감했던 탓에 그 뒤에 나온 시집도 샀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 시집 한 권의 영향이 너무 ' 강렬'해서 오히려 시인의 그 이후 시작 활동이 묻혀 버리는

결과를 가져 왔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긴합니다만

 

그 이후에도  시는 물론 소설 작품까지 발표 했음에도 마치 문학활동은 안하고

오히려 연예인 같이 가십거리로 더 많이 오르내리는 인물로 되어 버린 감이 있어 안타깝네요.

 

 

어떻든 '서른'은 인생에서 의미로운 나이입니다.

학업생활을 마치고 직업생활을 시작하든 결혼을 해서 부모가 되든...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거의 직업생활이 끝나는 60세로 보면 1/2 지점이고, 인간 수명을 120세까지는 차치하고

90까지 잡는다치면 1/3이 지나는 지점이고 그러네요.

 

우리 세대 때는 결혼 적령기를 지나 막 초짜 엄마로 주부로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요즘은 피교육자로서의 학교생활이 끝나고 사회에 발을 들여야 하는 나이인데... 그게 쉽지 않아 고민이 많은 나이입니다.

대학교 5학년 6학년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미뤄 둔 대학 졸업하라고 연락이 오고 이력서를 몇 십통 몇 백통

써는 경우도 있다니 한창 사회에서 일에 열정을 불태워야 할 시기에... 기약없는 취업준비로 ' 삭고 있는'

청춘들입니다.

빠른 시일 안에 사회 세대 교체가 원할해져서 ' 젊고 빛나는 청춘, 꿈꾸는 청춘' 본연의 역할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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