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경주 외계(外界)

생게사부르 2017. 12. 13. 00:18

김경주



외계(外界)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
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 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 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