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효숙 장엄미사, 가을빛

생게사부르 2017. 11. 17. 00:35

김효숙


장엄미사


나무는 지금
물드는게 아니고 버리는 중이다
태생이 붉은 알몸이라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물만 들이던 잎새는
물을 버리고 붉게 우화 한다
저 타오르는 단풍들
비우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강 앞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다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기 위한
깨끗한 마무리
마지막 장엄미사다

마른 잎 같던 한 사람
가뿐하게 져 내려
빈 껍질 벗어 단풍나무 숲에다 불 지르고
강 건너

북망으로 떠났다

 

 

 

가을 빛

 

 

 

산 너머에서

물든 은행잎 편지가 도착했다

노랑에 따뜻함을 덧칠한 풍경도

곧 갈색 슬픔이 내려 앉으리라는 걸

 

꿈을 버리면 한없이 가벼워 지는지

바람에 몸을 누이며

휘파람소리를 내는 억새풀 허리에

열매를 떨어낸 굴참나무에도

이별의 빛이 걸렸다

 

하늘이 깊어지자

된서리의 기미를 알아챈 새는

날마다 높이 날아 올라

어린 새끼들 손을 잡고 건널

먼 남쪽 하늘을 자로 재고 있는데

 

봄풀이 자라 올라 시드는 그 짧은 거리

열망이 익기엔 찰나 같은 시간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고작

세끼 밥 끓이는 일도 힘겨워하며

떫고 풋내 나는 시 몇 줄 적어 본 일

추억의 문장들을 어루 만지며

그것이 감사인지 슬픔인지 셈해 보며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일

 

가을 빛 거두어 품에 안기도 전에

해는 걸음이 빨라지고

붉은 노을 저편 어디선가

삭풍이 기지개를 켜고 기다린다는 소식 온다

 

 

 

 

사진:  갈매못 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