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짐승에게도 욕을

생게사부르 2017. 7. 2. 08:39

유홍준


짐승에게도 욕을


짐승에게도 욕을 한다

짐승에게도 욕을 바가지로 퍼붓는다 어머니는

혀가 빠질 놈의 짐승이고, 잡아먹을 놈의 짐승이고, 때려

죽일 놈의 짐승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욕을 바가지로 퍼 붓고 가축들에게 사료

를 준다

바가지로 탁

대가리를 때리고

바가지로 탁 등골짝을 때리면서 준다

그러면 내 착한 아들처럼

어머니의 짐승들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고개를 처박고 후루룩후루룩 밥을
먹는다


- 저녁의 슬하  . 2011. 창비

 

 

 

*       *       *

 

 

병원을 드나드는 건 물론이고 미용실이나 호텔을 이용하고 장례를 치뤄주기도 하는,

개나 고양이를 가축이 아닌 가족으로 키우는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가겠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저런 광경을 자주 목격 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사료를 주러가면 그 사이 기다리지 못하고 머리를 처박고 달겨드는 통에 
' 바가지로 탁' ' 대가리를 탁' ' 등줄기를 탁' 때리면서 사료를 다 부어 넣을 때까지 기다리도록 했다

 

농사를 짓기 위한 외양간의 소를 비롯해서 돼지, 집집이 키우는 개, 닭... 

그때의 짐승들은 다 집안의 재산이거나 결국에는 잡아 먹힘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짐승만이 아니었다. 자식새끼들에게도 그랬다.

 

1980년대까지 자녀들은 ' 교육적 훈계나 체벌' 이 흔해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맞으면서 자랐다

아이들이란 개구지고 장난이 심하고 호기심이 많아서 가만히 있지 않고 늘 어떤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었다

 

81 남자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갔을 때 선생님을 속이는 학생들을 교무실에 불러 ' 머리를 탁',

신임 아가씨 교사였던 나는 남동생뻘 되던 아이들이 맞는 걸 보는게 영 불편하고 속이 거북했다.

어떻든 머리나 뺨은 때리지 않았으면 싶었다.

한번은 학생부 담당 체육선생님께서 아이 머리를 붙잡고 밀치면서 캐비넷에 몇번이나 쳐 박는 걸 보고

저러다 '애 하나 잡는 것 아닌가' 하고 얼마나 맘 조렸는지 모른다.

 

나중에 그런 심정을 얘기 했더니 경력자들 선생님께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다.

 

그런 유형의 학생들은 선생님 간(?)을 보고 말랑하게 나가면 사실을 털어 놓지 않는다.

' 선생님이 도대체 얼마나 아는지 가늠하면서 증거가 나올 때까지 버티다가  선생님이 알고 있다 싶으면

조금씩 털어 놓기 때문에 나중에 더 큰 일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아예 기선을 제압해서 진실이 뭔지를 알아야

제대로 일을 처리하고 도움을 주고 예방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일면 수긍이 가긴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최근 학교에서 체벌은 거의 없어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조금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도 아이들이 질색을 한다

분명 '인권보장' 으로보면 향상을 가져 온 부분인데 그러한 외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는 일이 전통사회에 비해

더 빡빡해져서 그런지 사실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간 관계가 내용적으로 보면 더 황폐해진 것은 아닌지 ...

 

위 시에서처럼 어머니가 ' 머리를 탁' 때리는 일면 무식해 보이고 거친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 저변에는 일종의

끈끈한 애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즈음 고상하고 교양있는 부모님들은 때리지도 않고 야단도 치지않지만 애정이 철회된 랭랭한 부모자식관계

나 직업인으로서 교사와 학생이 사무적으로 만나는 관계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육체에 가하는 폭행은 없어졌지만 정신적인 학대나 정서적인 황폐함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건 아닌지...

 

미국은 신체나 언어적 폭력을 금지하는 여러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인권의식이 높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때리거나 접촉할 필요도 없이 권총으로 생명을 빼앗아 버리는 것은 내게 늘 아이러니였다. 

총기소지가 서구처럼 흔하지 않아서 다행이랄 밖에 ...

 

하긴 위 시에서처럼 짐승에게 자식에게 욕을 한바가지 끌어 붓는게 일상적으로 허용되던 시기여서 그렇지

요즘 시대에 저랬다간 신고 당하거나 인터넷에 사진이 찍혀 돌아다니면서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것이다

 

'혀 빠질놈' 도 점잖게 쓴 것이고 경상도에서는 '쎄가 만발이나 빠질 놈' ' 빌어묵을 놈' 이라고 했다

 

교수나 신부님처럼 통용적으로 젊잖게 여겨지시는 분들도 핸들을 잡으면 욕이 튀어 나온다는 운전 문화

어느 도덕선생님이 차마 욕을 못해서 1번부터 5번까지 미리 욕의 강도를 정해 놓고 ' 에이! 1번' ' 에이 3번'

했다고 하던데 5번쯤 되면 ' 씨** ' 가 사용되는 쌍욕이 들어 있지 않았을까?

 

사셨던 아버지가 살아 계셨던 시절, 이왕이면 욕을 해도 좋은 내용으로 해 주자고 해서 그렇게 해 본적이 있었다.

 

' 야이! 부자될 놈아 ! 크게 될 놈아! '  

 

근데 욕을 통해 뭔가 화나는 정서를 풀어야 하는데 속 씨원히 풀어지지 않는다는게 단점이었다

 

어떻든 맞는측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꽃으로도 짐승이든 사람이든 때리지 않을 일이긴 하다

 

심리학에서 욕설이나 체벌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일시 중지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자존감을 해쳐서

부정적 행동을 더 키운다고 보고 있다. 

결국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오려면 '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는 말처럼

미운 놈일 수록 '애정과 관심과 사랑'을 더 주는게 근본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물론 그걸 안다고 실천까지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아예 그점을 모르고 욕설, 잔소리, 심지어 체벌을 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고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부속물처럼 여기거나 '자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것을 강요하면서' 자녀사랑'이라 착각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미 문제가 많이 쌓인 학생과 학부모를 상담했던 경험으로 봐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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