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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겨울 선운사 1.

생게사부르 2015. 12. 19. 20:44

고창 선운사의 겨울 1. 

 

선운사는 사시사철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사랑스러운 사찰 같습니다.
겨울동백, 봄동백이 흐드러지고, 여름에는 사찰 특유의 시원한 바람, 초가을 꽃 무릇에서

이어지는 가을 단풍, 겨울 눈꽃의 장엄함
오롯이 사계절을 들러봐야 선운사의 모습을 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한 학년을 마치고 학교 웍샵으로 선운사를 찾은 것은 겨울이었습니다.
겨울 눈꽃의 장엄함은 충분히 체험했는데 아직 동백꽃이 피기에는 이른 시기였습니다.

 
동백도 꽃 무릇도 다 눈꽃에 묻혀 자취를 볼수 없었지만  시절이 되면 다시 제 모습을 드러 낼 것입니다.
꽃들은 늘 그래왔으니까요. 제가 펴야 할 시기에 피고 져야 할 시기에 지는 ...

대신 겨울 소리를 충분히 들었습니다. 발 밑에서 뽀드득거리는 실제 눈 소리외에

내리는 눈이 소리를 내는 것 같은 신비로운 고요함...
사방천지 흰 눈이 흩날리는 속에서 듣는 정적의 소리...환상이었습니다.

이 담 동백꽃이 필때가 아니라 질때 와 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동백꽃이 폈을 때의 장엄함과 더불어 꽃이 뭉텅이째 떨어져 내릴때의 비장함은 어떨지 궁금해서요.

 

< 선운사 가는 길 차창 밖>

 

 

 

 

 

 

 

 

 

 

 

 

 

 

 

 

 

 

 

 

 

 

 

 

 

 

 

 

 



도솔산 혹은 선운(禪雲)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입니다.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요.

특히 눈 내리는 한 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동백꽃이 시인ㆍ묵객들의 예찬을 받고 있습니다.
' 백설의 흰 눈속에 붉은 동백'을 상상 해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그렇게 핀 동백은 4, 5월 초순까지 절정이라 합니다.

남해안 쪽 해안이나 섬 대부분 동백이 피는데 유독 선운사 동백이 유명한 이유가 뭘까 좀 궁금했습니다.

궁금하면 찾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찾았습니다. 

 

조선 성종때 동백기름을 짜고 산불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심은 인공림이었습니다. 역시 인간의 의지가 가미된...

화마가 절에 미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사찰 경계를 따라 띠 모양으로 조성을 했다고 하며

수령이 500년 된 나무 3000여 그루가 30M 너비로 늘어서서 숲을 이루고 있으며

내륙지방 동백나무 자생지로선 북한계선이라고 합니다. 그런 연유로 1967년 2월 이후

천연기념물 18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왕이면 선운사 창건까지 알아봅니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어떻든 그 시기는 6C이니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 창건이 된 것 같습니다

검단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습니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며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이 지역에는 전쟁 난민이 많았는데, 검단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ㆍ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름도 '검단리'라 하였지요. 선운사가 위치한 곳이 해안과 그리 멀지 않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염전을 일구었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보아,

염전을 일구어 인근의 재력이 확보되었던 배경 등은 역사적 사실인 듯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쁜 관리들이 많은데,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베푼 군주나 목민관,

자신들의 지혜로 백성들의 삶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던 인물들은 언제나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