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화은 슬픈성지

생게사부르 2017. 3. 27. 15:10

이화은


슬픈성지


당신이 성감대에 대해 물었을 때 그때 나는 너무 어렸지요
네 귀의 각도가 정갈한 흰 손수건을 내 한쪽 무릎에 덮고 덥석 입
술을 가져 왔을 때 나는 당신이 내 무릎에게 할말이 있는 줄 알았
지요
그때부터 나는 어리지 않아 손등에도 목덜미에도 성감대의 새순
이 쑥쑥 자라나 갈대밭처럼 알을 낳고 새끼를 치고 강물소리를 키
우는 무성한 여자가 되었는데
한쪽 무릎이 자라질 않아요
끊어진 필름처럼 그 후의 스토리가 전개되지를 않아요
정갈한 손수건이 덮힌 그대로 까까머리 덜 자란 손 하나가 내 교
복 스커트를 걷어 올리던 거기서,
무릎이 쫑긋 귀를 세우고 성감대를 듣던 거기 딱 멈춰 서서 막무
가내로 새로운 경험을 거부해요 봉쇄수도원의 수녀들처럼


'미간' 문학수첩.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