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화은 쑥캐기, 급소를 건드리다

생게사부르 2017. 3. 28. 00:50

 

 

 

이화은


쑥캐기


쪼그리고 앉아
쉬하는 자세가 가장 좋다

멀리서 보면 제것을 들여다 보는 듯,
허나 정말로 들여다 볼 필요는 없다 쑥이 올려다 보고 있다

고로 바지 보다는 통치마를 입어라 입어보면 안다
동의 보감에도 나와 있다 아니 눈먼 소녀경이던가?

적당히 자란 연애를 자르듯 칼질은 정확해야한다
싱싱한 추억으로 국을 끓여 먹을 수도 있다

오금이 저리거든, 오금이 저렸던 기억들을 한 칼 한칼 마음에 저며라
인생 공부에 칼 같은 도움이 된다


쑥캔 자리는 돌아보지 마라
칼잡이가 뒤를 돌아보면 이미 프로가 아니다

허리가몹시 아플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후유증은 없다


급소를 건드리다


비 온 이튿날
고추 밭의 잡초 한 떨기를
무심코 뽑아 올렸는데

손 끝에 물컹 딸려오는 지구 한 덩어리

깜짝 놀라 탁!
놓아 버리기는 했지만
불알을 잡혀 동그랗게 나 뒹굴던
한 남자를 생각 했으니

내가 지구의 급소를 건드린 것이다
큰일 날 뻔한 것이다

오늘 아침
지구가 몇 바퀴 나 뒹구는 동안
잠깐 어지러웠던 이유를
두 개의 말랑 한 해가 나란히 떠 올라도
지구인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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