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아 에 이 오 우 / 스무이레
외할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미친 너는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다 말고 여전히 미쳐서 설탕 단지를 마루로 내 던졌다
마루에 찐득거리는 별가루처럼 쏟아진 흰 설탕
그때 부엌에서 들려오는 이상하고 조그만 소리
미친 너는 그 소리를 듣자 마자 외할머니가 느닷없이 죽을 것을 알았다
이상하게도 알았다 그 순간 네게서 '미친'이 떨어진 것도 알았다
새끼 노루의 까만 똥처럼 '미친'이 뭉쳐서 굴러 가는 것을 보았다
외할머니를 설탕 가루위에 옮겨 눕혔다
119에 전화를 걸다 말고 바라본 마루 위의 네 발가락 자국
눈 내린 것처럼 하얀 설탕 위 네다섯 개의 발가락 동그라미들
눈 위에서 총 맞아 죽은 외할머니 노루와
그 주위를 맴도는 새끼 노루 한 마리를 둘러싼
발가락 자국들, 아 에 이 오 우 다섯 모음으로 발음되는
* * *
생각 하나,
<죽음의 자서전> 억울하고 황망한 주검을 위한 천도제 49제 중 스무 이레입니다.
아 에 이 오 우,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체험이 자신도 모르게
다섯 모음의 외마디 '비명'으로 터져 나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외할머니에게 맡겨진 철딱서니 없는 '미친'손녀는 외할머니 살아 생전에는
철이 들지 않았나 봅니다.
교통사고로 졸지에 부모님을 다 잃고 오빠는 삼촌네 맡겨지고 할머니에게 맡겨 졌는지도 모를 일이고
IMF때 아버지 사업이 기울어서 엄마와 이혼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할머니 집에 얹혀지내는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세대차이 나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할머니와 사는 게 결코 반갑지 않습니다
상황이 불우하니 가끔 추상적으로 죽음을 생각 해 볼수 있었겠지만
아직 절실히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어린 나이입니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서 세상에 내쳐진 자신의 처지를 앙갚음 할 때라곤 외할머니 뿐이었을테고
외할머니가 언제까지 자신의 투정을 받아 줄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철이 들고 세상을 더 살다보면 그 고마움을 알고 표현도 하고 효도를 하면서 은혜를 갚을 날도 올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럴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가슴에 피멍이 든 채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낙인'이 찍혔습니다.
하얀 설탕 위에,
눈 위에 찍힌 발가락 자국들
시각을 청각의 비명소리로 바꾼 詩입니다.
삶의 고통, 허망함을 지극히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그 의미를 잘 새겨보면 아, 에, 이, 오, 우
눈물 나는 詩인 것이지요.
과거 조손가정에서 자랐거나 현재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 혹은 친할머니나 외할머니에게서 성장한
독자들은 더 절절하게 다가 올 시 같습니다.
생각 둘,
최근에 저도 동갑내기 외삼촌을 여의었지만
문상을 가서 느끼는 일들 중 한 가지
어느정도 세상을 사시다가 자연사 하신분들은 나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더라도
명복을 빌어 드리고 오면 되는데 생판 젊은사람의 썰렁한 상가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참으로
그 사연이 궁금하고 안타까움 또한 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연으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까?
3년이나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수면위로 떠 올랐습니다.
인생 과정에서 남들 대부분 한번씩 다녀오는 고등학교 시절의 제주도 여행을
도착해 보지도 못하고 한날 한시 국민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그것도 공개적으로 그 많은 생떼같은 학생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으니...
제 생전에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사고 등 숱한 인재가 있을때 마다 안타깝고
억울한 주검들에 마음 아팠지만
세월호 같은 국민적 트라우마는 정말 '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총체적 부패나 위기의 절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 아들 딸을 잃은 부모님들의 가슴에 든 피멍
말은 고사하고 '비명'도 이젠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들
늦었지만 미수습 실종 아홉분 수습되고 모쪼록 사고원인이라도 제대로 밝혀 이제 먼길 훨훨 떠나고, 떠나 보내서
송신스럽기짝이 없었던 혼란의 세월 거두고 그 영혼들 편히 잘 쉬게 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이미지 출처 기자협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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