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승희 씨앗

생게사부르 2017. 3. 20. 09:06

이승희


씨앗


1.

꽃이 피거나
열매 맺는 일이란 습성이나
본성이 아닌거야
검은 흙속을
아주 오래 무던히 걸어 온 시간들이
단단하게 뭉쳐 있다가
풀려지는 일이야.

감자 꽃이 피는 것은
하얗게 피어 말하는 것은
땅 속에 말 못할 그리움이
생겨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지.


2.

그래도 한번 더 생각 해 봐, 저 들판, 저 강가, 네가 발 딛고
선 이 언땅 속 어디에든 바람이 숨겨 둔 풀씨들이 발꼬락을
움직여 무엇으로 일어서려 하는지, 한때 그것들은 서로 다른
날개의 길이로, 그 불균형으로, 바람을 타고 올랐을 것이고,
혹은 가능한 자신을 멀리로 뱉어내는 그 모든 세상에서 밀려 나
아주 쓸쓸한 저녁을 맞았을지도 모르지. 잘 보면 네가 가
고 싶은 곳은 분명 보일거야. 바로 네가 발 딛고 선 그자
리일지도 몰라. 네가 가둔 것들, 네가 끝끝내 손에 쥔 그것들
을 한번 쯤 놓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