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정현종- 구름층, 산골짝에 등불 비칠때

생게사부르 2015. 12. 15. 23:42

정현종 1. 

구름층

맑은 날
언뜻 언뜻 푸른 하늘이 보이는
저 구름층은 얼마나 시원한가.

가령 건물의 십팔층이나 육십 오층에 비해
또 사람 세상의 이런 층 저런 층에 비해
얼마나 가볍고 환한가.

그 가벼움의 높이와
그 환함의 밀도의
폭발적인 시원함에 겨워-----


산골짝에 등불 비칠 때 
     ㅡ황재형 화백의 그림에서


어두울 때는
항상
모든 어둠이 거기 수렴되어 있다.

그러할 때

어느 창문에서,
불빛이,
거리를 잴 길 없고
깊이를 알 길 없는
불빛이
보일 때,

어느 초신성(超新星)보다도 더
밀도 있는 빛으로
어두운 우주를 눈뜨게 하는
불빛이
보일 때,

모든 차가움을 녹이며
모든 따뜻함을 수렴하며
한 불빛이
어느 창문에서
새어나올 때------


꿈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구기자차를 잔에 따르고
가라앉은 구기자를 숫가락으로
건져 올리는데
잘츠부르크도 올라오는 게 아닌가!
모차르트를 듣고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구기자를 건져 올리는데
아직 못 가본 그곳도 올라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여
꿈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가족의 우울을 감싸면서
꿈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어제와 오늘의 불행을 감싸면서
꿈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시인의 말>

성능 좋은 감각과 구성적인 상상력 그리고 가슴이라는 저 깊고 넓은 바다의 바닷가,

그 슬프고도 기쁜 파도에 발을 적실 줄 아는 사유(그러니까 두뇌적이기만 한 것이 아닌 사유)로

이루어진 시심에게 사물은 경계가 없다. 부연하자면 사물의 경계가 지워진다는 것은 그것들이

거역할 수 없는 생동 속에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 기차에 관한 명상

기차는 떠나서
기차는 달린다
움직이는 건 가볍고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달리는 기차 바퀴소리의
그 꿈결이
이 기나긴 쇳덩어리를 가볍게
띄운다-꿈결부상(浮上)열차.
교행(교행) 때문에 서 있으면
근심도 서서 고이고
꿈꾸는 간이역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는 움직인다
움직이는 건 가볍고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