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베트남

베트남 하노이

생게사부르 2017. 3. 10. 01:14

하노이 바딘광장과 한기둥 사원 

 

베트남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가지 업적에서 호치민을 빼고 얘기할 수 없겠지요.

학창시절에는 호지명이라는 한자이름으로 공부한 기억이 납니다만

윌리엄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에 소개된 한 구절로 그 인격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 반은 레닌이고, 반은 간디다 "

평생을 프랑스, 일본, 미국 제국주의와 싸운 혁명가이자, 냉철한 전략가이면서

베트남인들에게는 ' 호 아저씨'로 불리던 검소하고 서민적인 민족지도자가 연상됩니다.

 

 

 

(1890 ~1969)

 

이 광장에서 1945년 호치민이 독립선언을 낭독했고, 호치민의 묘소 또한 이곳에 있는

미이라로 안치된 시신을 보기 위해 베트남 전역의 사람들이 모여든답니다.

시신을 볼 수 있는 요일이 정해져 있어 우리는 묘소 건물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위병이 인형처럼 부동자세로 서 있는

정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게 이제 별 의미가 없지만 판문점 남북 대치 위병 서 있는 거 연상하시면 될듯요.

 호기심 많은 눈이 위병근무 교대 하러가는 측면 사진도 찍었습니다.

 

 

 

바딘광장

 

 

 

 

호치민 묘가 안치된 건물외양만 보고 내부를 볼 수 없어서 유감이었습니다.

 

 

 

 

 

 

위병 근무 교대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영국 버킹엄궁 근위병 근무 교대식을 위시하여 우리나라 경복궁 앞 수문장교대식 하는 장면 역시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좋은 기회이지만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 여행일 경우 여행일정에 잡혀 있든지

아니면 그 부근을 지나가다 우연히 시간대가 맞아야 한다는 건 일종의 행운이겠지요.

 

 

 

 

 

 

 

 

 

 

맞은편 의회건물입니다.

이전에는 아오자이 입고 자전거에 타고 가는 여성들이 베트남 거리의 볼거리였는데 이젠 오토바이 행렬로 바뀌었습니다.

 베트남 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오토바이 행렬과 빵빵 거리는 소리

자동차, 오토바이, 시클로가 섞여 도로를 오가는 일상이 하나의 풍경이 된 듯 싶습니다.

 


 

 

바딘광장에서 이렇게 뒷걸음 치며 사진을 찍고 또 찍히고

 

 

한 기둥 서원

 

 

 

 

 

 

기둥 하나로 서 있는 한기둥 사원(일주사)은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국보 1호입니다.

이름 처럼 기둥 하나가 사찰을 받치고 있는 형태인데 그 주변은 물로 차 있고 네 귀퉁이에 연꽃이 새겨져 있습니다.

서민들이 이곳을 찾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이를 점지 해 준다는 내력 때문이랍니다.

사원을 두바퀴 돌고 관음보살에게 기도를 하면 된다니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을 법 합니다

 

프랑스가 이 사원을 없애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결국은 살아(?)남았답니다.

 

그 옆에는 불교 사찰인지 개인 무덤인지...안내문이 제대로 없어서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는 그 역사가 오래됩니다


시민혁명으로 근대국가에 들어선 영국과 프랑스, 뒤늦게 통일이 이루어진 독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값싼 원료와 노동력 확보, 상품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던 제국주의 열강,

아직 전통적인 농업사회에 머물러 있던 아시아를 점령하러 나오기 시작하는 서세동점 시기

 

당연히 덩치가 제일 큰 청나라가 그 첫번째를 대상, 여러 열강들이 진출했지만 아편전쟁을 치른 영국이 선점

 인도마저 플래시 전투를 거쳐 영국에게 기회를 빼앗기게 되자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이 무렵 내란상태이던 베트남의 구엔푹안(阮福職)을 원조하여 베트남이 통일되고

1802년에 구엔 왕조(월남국)가 성립했으나, 구엔 왕조는 청나라를 종주국으로 문물 제도를 받아들여 국가 체제를
갖추게 됩니다.

그 후 베트남은 프랑스의 진출을 꺼려 유교를 옹호하면서 크리스트교를 탄압하였고

 선교사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나폴레옹 3세는 카톨릭교를 보호한다는 구실로 군대를 파견하여

사이공을 점령하고 베트남과 사이공 조약을 맺었습니다(1862년).

 

이 조약으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남부지역인 코친차이나를 넘겨받고,

크리스트교 포교와 통상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후 캄보디아를 보호국으로 하고, 1883년에는 베트남을 완전히 지배하기에 이르러 
종주권을 주장하는 청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청 · 프전쟁(1884~1885)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합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 을 조직하였고 1893년에는 라오스도 연방에 편입시켜

인도차이나반도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 문화유적지가 베트남 곳곳에 남아 있는데 특히 남부 다낭에 프랑스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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