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수경 기차는 간다 2

허수경 기차는 간다, 섬이되어 보내는 편지

섬이되어 보내는 편지/ 허수경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이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겠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지와 빛이 다른 것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을 것이며 ​섬에서 나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섬이..

허수경 기차는 간다, 이 가을의 무늬

기차는 간다/ 허수경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 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이 가을의 무늬 아마도 그 병 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지난여름을 촘촘히 짜내 던 빛은 이제 여름의 무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의 무늬가 정해질 때까지 빛은 오래 고민스러웠다 그때면, 내가 너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너를 조금씩 잃어버렸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순간 너를 절망스런 눈빛의 그림자에 사로 잡히게 했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순간 세계는 뒤돌아섰다 만지면 만질수록 부풀어 오르는 검푸른 짐승의 울음 같았던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