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황동규 삼남에 내리는 눈, 즐거운 편지, 조그만 사랑 노래

생게사부르 2015. 12. 7. 00:46

황동규 편

 

삼남에 내리는 눈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즐거운 편지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메일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너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옆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것을 믿는다

 

조그만 사랑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란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아래 사진 : 대학동기로 영주 사는 친구가 보내 준 사진으로 기억됨

                       강가에 살아서 여름이면 아이들이 수영을 하다가 그대로 집에 올라오기도 한다고 했다

                       그 아이들 중 이제 한명은 작년 겨울 결혼을 했고, 다른 둘도 그 즈음의 나이

                       겨울철에는 집에서 이런 경치를 찍을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좀 헷갈린다. 인천 있는 친구도 비슷한 구도를 가진 사진을 한번씩 카방에 올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