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편
삼남에 내리는 눈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즐거운 편지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메일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너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옆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것을 믿는다
조그만 사랑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란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아래 사진 : 대학동기로 영주 사는 친구가 보내 준 사진으로 기억됨
강가에 살아서 여름이면 아이들이 수영을 하다가 그대로 집에 올라오기도 한다고 했다
그 아이들 중 이제 한명은 작년 겨울 결혼을 했고, 다른 둘도 그 즈음의 나이
겨울철에는 집에서 이런 경치를 찍을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좀 헷갈린다. 인천 있는 친구도 비슷한 구도를 가진 사진을 한번씩 카방에 올리기에...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정자:기대, 미래의 남편 (0) | 2015.12.09 |
---|---|
나희덕- 속리산에서, 대숲에 내리는 달빛, 흔들리는 것들 (0) | 2015.12.07 |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도종환 담쟁이 (0) | 2015.12.07 |
하상욱 단편시 (0) | 2015.12.07 |
김유철 천개의 바람, 슬픔의 뿌리,그런날이 있다 (0) | 2015.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