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야기

이팝나무,조팝나무

생게사부르 2016. 5. 6. 13:33

이팝나무와 조팝나무

 

 

벚꽃이 분분하다가 사라지면 이곳 저곳서 여러 꽃들이 피어납니다

그 중 눈을 끄는 것이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이팝나무인 것 같습니다

 

쌀을 자급자족하기 이전 일반 백성들은 지지리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밥을 못먹고 굶주렸다고 하면 이해를 잘 못합니다.

 

' 밥 대신 자장면 먹으면 되잖아요. 피자나 통닭 먹으면 되지요. 라면이라도 먹지 그랬어요'

 

다수 소작농이던 백성들은 가을에 수확을 해도 그 동안 빌려 먹은 빚을 갚고 나면

한 해 겨울을 넘기기도 힘들었습니다

 

 보리는 아직 철이 일러 파릇파릇 할 뿐 수확을 해서 곡식이 되려면 6월이나 되어야 하니

그야말로 봄에는 '초근 목피'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을 하는 시기였지요.

그나마 얼었던 땅이 풀려 쑥을 비롯해서 냉이 씀바퀴 등 식물들이 올라와야 굶주림을 면할수 있습니다.

곡식이 모자라니 쑥을 캐서 쌀가루 좁쌀 가루 등에 버무려 만들어 먹던 쑥 털털이나 나물죽을 먹었지요.

 

특히 흉년이 든 해는 더 형편없었겠지요.

아이들이 소를 몰고 산에 올라 갔다가 허기를 면하려고 진달래나 철죽꽃을 너무 많이 따 먹어서

설사를 만난다는 얘기, 배가 고파서 물에다 간장을 타서 마시며 허기를 달래기도 하고

 보드라운 흙을 반죽해 흙떡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들도 있고...

 한 여름에는 영양실조로 죽어 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오죽하면 우리 조상님들의 인사가 "진지 드셨습니까? " 였으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얀 이밥'에 고깃국 그득하니 배부르게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을까요.

 

상황이 이러 할진대, 보리쌀이 나오기 전 이 시기에 하얗게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이팝나무,

 이 나무가 하얀 쌀밥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 싶습니다.

 

'이팝 나무'라는 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 '이씨의 밥 이밥→이팝'이 되었다는 설이 하나 있습니다

 

양반으로써 관리가 되어야 조정의 녹을 받아 먹고 살기에 걱정이 없었을테고 당시는 국록으로 곡식을 받았으니

그 시절 쌀밥을 일상으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조선의 관리라야 가능 했을 테지요.

(오늘 날 생각 해 보면 흰 쌀밥이 건강에 안 좋고 오히려 보리밥이나 혼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과 별도로)

 

또 다른 이름의 유래는 여름으로 넘어가는 입하 무렵에 꽃이 핀다고 해서 '입하나무'로 불리다가

발음이 변해서 이팝나무가 되었다고도 하고요.

 

 

 

 

 

 

이팝나무는 10M  정도 높이의 나무로  4월 말에서 5월 초 길쭉한 모양의 꽃이 아카시아 꽃처럼 뭉치로 피어 나는 데 반해

조팝나무는 1.5M 정도 높이에서 꽃이 하나씩 피면서 마디마다에 꽃이 피어 가느다란 줄기 전체가 꽃으로 뒤덮입니다.

 

소담한 모양의 꽃이 가지에 달리는 조팝나무는 꽃 가운데 노란색을 띠고 있어 좁쌀로 지은 조밥을 연상시켜

조밥나무, 조팝나무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함박눈이 내린 것 처럼 보여서 설유화라고도 하고, 꽃 모양에 따라 갈기조팝, 참 조팝 등 여러 조팝나무가 있네요 

 

어떻든 먹을 것이 충분하지 못했던 시절, 흰 쌀밥과 조밥을 연상하게 해서 눈으로라도 배부르라는 자연의 배려였나 봅니다

 

  

 

 

 

 

 

마여고에서 장군 시장으로 내려 가는 소공원에 조팝나무 이팝나무가 함께 심어져 있네요.

'사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물이 만든 다이아  (0) 2016.06.21
바나나꽃 , 용과, 여주  (0) 2016.06.21
봄날은 간다  (0) 2016.04.19
다시 4월, 진달래 산천  (0) 2016.04.19
친구들이 집에서 키우는 꽃들  (0) 2016.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