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바다와 나비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길
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젓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 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김기림(김인손)
1908. 함북 학성
시집: <기상도> <태양의 풍속> < 바다와 나비><새노래>
1950. 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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