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기림- 바다와 나비, 길

생게사부르 2016. 3. 11. 13:37

김기림 

 

바다와 나비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젓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 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김기림(김인손)

 

1908. 함북 학성

시집: <기상도> <태양의 풍속> < 바다와 나비><새노래>

1950. 납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