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길상호 이야기의 끝

생게사부르 2019. 4. 18. 13:04

이야기의 끝/길상호


 

나무는 늘 배가 고팠다
불타버린 속, 나이테를 한꺼번에 잃어버리고부터
가지가 가 닿은 건 모두 빈속에 쑤셔넣었다
어느날은 그네를 타던 아이들 발목을 베어 먹고서
울음과 웃음 사이를 오가며 종일 흔들렸다
발목이 사라진 걸 모르고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그때부터 길 잃는 꿈을 자주 꾼다고 했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그을린 개의 긴 혀를 뽑아먹고서
밤새 구역질을 한 적도 있는데
토사물처럼 깔린 안개 속에서 개 비린내가 짙게 풍겼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나무의 허기를 줄여보려고
기간을 정해 한 번씩 제수를 바쳤지만
후로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지에 깃들었던 새는 울음을 빼앗긴 채 떠나야 했고
구름은 안예 저를 다 쏟아 놓고 사라졌다
나무가 그렇게 먹고 늘려놓은 건
세상의 시간을 벗어 난 바닥의 그늘 뿐이었다
하루하루 자라는 그늘이 두려워진 사람들은 결국
시멘트를 개 그 깊은 목구멍에 흘려넣었다
더 이상은 마음 조릴 일이 없어졌지만
나무와 함께 만들어내던 이야기도 거기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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