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건축, 미술,박물관

앤디워홀 전시관람기 (3)

생게사부르 2013. 10. 30. 00:03

딸과 함께 앤디워홀전 누비기(3)

 

 

4. 앤디워홀에 대한 불편한 진실의 정체 

 

 좋다 싫다 하기 이전에 운전을 하고, 하루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야 생계가 유지되며, 휴대폰을 몸의 일부인 듯 기계에 에둘려 살면서 기계적인 삶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모순. 어쩔 수 없이 자본의 논리에 둘러 싸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는 자가당착의 모순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평범한 시민이 이 시대 자화상일 것이다. (나만 그런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성(聖)스러움을 느껴야 하는 중세적인 위엄을 기대하기에 인간은 너무나 자유스럽고, 소수 특권층이 누리던 권력과 부의 권위에 압도되는 고급미술의 전통성을 주장하기에 시대가 너무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개개 자유로운 인간정신의 ‘지적 사유의 결정체’라 정의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를 통한 문학, 선과 색 ,원근, 질감을 통한 미술, 신체 표현을 통하여 무용이 표현하는 방법상의 기술(Skill)에 따른 차이일 뿐 “예술가 그 자체의 자유로운 인간 정신이 어떤 관점에 의해 어떻게 표현 되었으며, 그 시대를 살고 있는 다수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혜택, 물질문명의 편익을 넘치도록 누리고 살아가면서 신부님이나 스님들이 물질문명의 풍요와 편익을 일반인보다 앞서 누리면서 안락 해 하면 배신감을 느끼는 그런 기분이랄까?

개인적으로는 이중섭,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작품을 좋아한다. 그림 그리는 재능 밖에 없어서 화가의 삶을 일상으로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돈’으로 바꿀 줄 몰라서 생계(생존)를 위해 어렵고 힘든 삶을, 불행하면서도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 그 당사자들은 분명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을 터이고 그런 자신의 생활을 극복하고 싶었을테지만 어떻든 과정으로서의 삶이 그렇게 살아졌던 사람들. 당시 시대현상을 뛰어 넘는 예술적 관점으로 살아생전에 인정받지 못하여 불행했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작품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우직함과 순수함. 삶의 치열한 정신세계를 표현하려는 그런 장인정신이 다른 사람의 가슴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감동을 주어 사후라도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살아 생전 부와 명성을 누렸던 피카소 , 앤디워홀 같은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천재들이 당대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 권력을 쥐었던 정치인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비약일까? 우리의 현실에서 존경할만한 정치인을 못 가져봐서 정치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투영되기도 했을 것이지만 그들은 거의 대다수가 입으로 하는 얘기가 진심과 달라서 나중에는 아예 진심이 없는 사람들로 느껴지곤 한다. 시대의 외형적 변화와 상관없이 인간 다수가 추구하는 ‘ 삶의 진실’, 역사가 요구하고 결국 역사가 평가하게 되는 진실이 당대 처세에 능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의해 얼마나 왜곡되고 변질되든가?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한다면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상품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 일 것이다.

르누아르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그림이라도 즐겁고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느냐’ 해서 예쁘고 행복한 여성의 그림을 그려 당대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고흐는 삶의 그 밝고 아름다운 면을 다 두고, 끝까지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았던 이웃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일상이 그림 그리는 일인데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던 고호의 삶이 마음 아프고 그 천재성을 알아주지 못했던 동시대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안타까운 만큼 당대 대중을 사로잡고, 살아서 명성을 쌓으며, 돈까지 많이 벌어 누릴 것을 다 누렸다는 것이 물욕을 충족시키는 일에 머리 회전이 빠르고, 처세에 밝았던 예술인이 아니었던가 하고 그 순수성을 의심해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천재적인 예술가 뒤에는 그늘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예술가를 뒷바라지한 훌륭한 내조자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그들의 희생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이쯤에서 처음 앤디워홀 전을 관람 할 때의 불편함 심경의 정체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예술에 대한 개인적인 기호로 말하자면 예술가가 지닌 예술정신이 손이든, 목소리든, 그 사람의 인체를 도구로 하여 표현에 충실한 순수 1차 예술을 좋아한다.
예술가에 있어 정신(혼)과 손, 혹은 목소리, 율동이 따로 나눠지지 않고 기계가 아닌 그 사람자신의 인체 일부분이 그 사람의 혼과 감정을 표현 해 낼 때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에서는 매우 개방적이고 사유에 있어 기호가 없을 정도로 자유롭지만 그런 부분에서 만큼은 고루해서 인간이 직접 터치하고 , 직접 몸으로 풀어내는 예술이 예술이라는 선입견. 기계를 이용하는 등 2차 3차로 파생된 예술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나의 기호에 대한 얘기다.

딸 역시 미국보다는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유럽을 선호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 거의 13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완성이 되기엔 까마득한 사그리다 파밀리아, 까사비요트, 까사밀라, 구엘 공원 등 인간을 위한 가우디의 건축물에 심취했던 딸은 루브르, 오르세, 우피치 미술관 등을 섭렵하고 다녔다. 스페인에서 생활 하면서 이웃한 유럽의 문화를 틈나는 대로 찾아 다녔기에 미국적인 문화를 우선 동경한 또래 친구들과는 정서상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앤디워홀은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비지니스야 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라는 말로 삶을 함축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심리를 이용하여 예술의 대중성을 추구하고 상업주의를 철저히 이용하여 공장(Factory)에서 상품 찍어 내듯 생각을 작품으로 만들어 팔줄 알았고, 살아생전에 부와 명성을 누렸다는 선입견. 그래서 ‘가장 가보고 싶은 전시 1위, 피카소와 더불어 옥션 거래 총액 1,2위’하는 홍보문구가 오히려 거부감을 갖게 했을 것이다.

  미술가를 포함하여 작가란 사회현상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악하여 고발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앤디워홀 역시 현대인의 소비심리를 이용해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지만 현대의 대량소비 문화를 찬미함과 동시에 비판하고 풍자했다. 그는 상업미술로 시작하여 일상적인 생활미술가로서 한 획을 그었지만. 말년에는 순수예술로의 전환을 시도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의 미술작품을 통한 정신의 변화를 나름대로 추측해 볼 수 있기에 그러하다.

초창기 생명이 없는 사물 수준의 작품들(캠벨수프 캔, $ (달러사인) 브릴로 상자)이 점차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작품으로 나아간다 (앰뷸란스, 재키 연작, 전기의자, 최후의 만찬). “워홀의 친구들 , 팝아트는 모든 사람들을 좋아 한다”의 레닌이나 마오에 이르러서는 이념(이데올로기)의 반목을 극복해 보였고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같은 ‘장 미셸 바스키아’와의 교류를 통해 인체해부적인 부분, 운동과 철학적 사색에 까지 관심이 확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가 아닌 한 독자 개인의 해석이지만 ‘순수예술’로의 전환이 두드러진 작품은 추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이지 않은 카무프라주( Camouflage: 위장) ‘요셉 보이스’였다. 그러나 그 변화를 반영할 작품을 많이 남기지 못한 채 59세를 일기로 타계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전통보다는 새로운, 현대적인 것이 선호되는 미국. 그러면서도 240년 남짓한 역사에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나라. ‘소비가 미덕’이라는 기치 아래 블록버스터의 헐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인의 영화가 되고 있다. 코카콜라, 맥도날드 햄버거는 미국사회의 일상적인 먹거리지만 세계사에 상징되는 의미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미국문화에서 대중의 소비심리를 부추기고, 만화나 영화, 텔레비전 등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미술 영역에 접목 시킨 팝 아트의 거장으로서 앤디워홀. 현대 미술계에 한 획을 그은 점은 부인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예술에 대한 기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맨 처음 ‘썩 좋아하지도 않는 앤디워홀’이라는 선입견에 대해 다시 생각 해 본다.

  아무리 세계화가 이루어져 문화의 상대성을 존중하는 풍토가 이루어져 있고, 국경이 없어지는 지구 공동체 문화라고는 하지만 전통이 있는 유럽, 특히 영국은 미국의 현실적인 영향력을 낮추어 보고자 하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예외일수 없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자긍심이 있는 나라의 국민은 미국을 내심 비하 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 파생되어 나가 세계 곳곳의 인종이 모여 이루어진 정신적 뿌리가 없는 나라. 그래서 무조건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산업사회의 산물로 졸부가 되어 천박한 문화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숭배하는 나라라는.... 영국인들이 연음, 묵음에 의해 생략된 미국식 발음을 은연 중 게으런(lazy) 영어로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다고도 하고,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이클 잭슨의 예에서와 같이 유달리 영국의 메스컴이 (비틀즈와 비교해)모함 일수도 있을 정도의 선입견을 갖는 비평을 많이 했다고 보여 질 때가 있긴 했다.

내가 앤디워홀 전을 보는 시각이 그런 맥락이었다면 이번 경험을 통해 극복 되었으면 한다. <끝>

 

 


 

'조각, 건축, 미술,박물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신 미술관 가는 길  (0) 2015.12.17
피에타, 부오나로티  (0) 2015.12.11
천안상록 리조트 조각  (0) 2015.12.03
앤디워홀 전시관람기 (2)  (0) 2013.10.29
앤디워홀 전시관람기 (1)  (0) 201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