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건축, 미술,박물관

앤디워홀 전시관람기 (1)

생게사부르 2013. 10. 29. 23:28

딸과 함께 ‘앤디워홀 전’ 누비기 (1)

1. 썩 좋아하지 않는 앤디워홀 전을 관람하다.

 

  2009년 1월,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전을 딸과 함께 관람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둘 다 앤디워홀의 미술세계를 좋아해서 보게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즘 세상에서야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여건만 된다면 지구 끝까지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생활근거지가 지방이고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써 평소 서울 오는 일 자체가 뜸한 일인데 모처럼 한양 올라와서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이의 예술세계를 입장료까지 주면서 접하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딸이 원룸생활로 갈아 탄지 한 학기가 지나도록 한 번도 들여다보지를 못했다. 딸 역시 어학연수를 위해 휴학 후, 복학하여 여러 가지 바빴던 탓에 한 번도 집에 내려오지를 못 하였다. 과년한 딸이 어디서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고 잠을 자는지 알지 못한 채 한 학기가 흘러간 것이다. 엄마로서는 참으로 민망하고 가슴 아픈 가족의 현실인 셈이다.

모처럼 엄마가 서울 온다니 딸로서는 어떻게 자기의 생활을 잘 꾸리고 있었는지 검사 받는 기분도 들었을 테고, 나름 엄마를 어떻게 즐겁게 모실 것인지 고민이 됐던 모양이다. 도착 한 이튿날, “ 엄마 , 대학로 가셔서 연극을 보시면 어때요? 그리고 도서관에 박혀 있는 친구 불러내어 저녁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으면 해요.”

  평소 문화잡식성인 엄마의 성향을 아는 딸의 제안이었다. 그러나 사실 올라 올 때부터 나름 생각한 게 있었다. 대구에서 갤러리(리안 갤러리)를 운영하는 친구가 청담동에도 갤러리를 내고, 서울에 자주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터라 모처럼 친구도 보고, 갤러리도 둘러볼 계획이었다. 딸이 컴퓨터로 위치를 확인하는데 잘 나오지가 않았다. 친구와의 통화에서 아직 서울은 쇼룸(show room) 정도여서 상주 하는 것은 아니고, 한번 씩 주문을 받아 작품을 설치해 주고 그 날로 KTX를 타고 내려간다는 답이 왔다. 더불어 다음 대구에서 보기로 약속을 하면서 “앤디워홀 전” 열리고 있으니 안 봤으면 보라고 추천을 해 주었다.

  ‘ 현대 팝 아트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앤디워홀의 전시회가 작고(作故) 20주년을 기념하여 2007년에도 한번 열렸고, 부산에서도 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몇 년 전 ‘30분에 읽는 위대한 사상가“ 시리즈에서 간략히 접했을 뿐 작품을 직접 보러 달려 갈 정도로 나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였던 모양이다. 마니아처럼 열광적으로, 혹은 role 모델로 존경해서 기꺼이 볼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좋아하는 미술가로서의 앤디워홀이 아니더라도 ‘한 인간으로서의 앤디워홀’에 관해 하루정도 시간을 투자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한편,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 유묵전”(예술의 전당)이었다면 겪지 않아도 되는 불편한 심적 갈등의 정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탐색 해 보는 것도 가히 나쁘지는 않을 일이었다. 이래저래 2% 이상 부족한 미진한 마음으로 관람을 하게 되었지만 모전 여전(母傳女專). 일단 마음을 정하면 또 누구 못지않게 순간순간의 시간을 진지하게 치열하게 보낼 줄 아는 지혜가 엄마와 그 딸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아이티 사태에 가슴 아프고, 생계를 위협받는 실직자는 물론, 비정규직의 고단한 삶을 앞에 두고 속 편한 투정하지 말고 감지덕지하면서 편하게 눈 호사하고 주어진 시간을 즐기면 될 것이다. 또 달리 생각하면 지방은 정치에서 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변방인 만큼 모처럼 서울 올라왔으니 너무 촌사람 표 나지 않게 조금 긴장하면서 사랑하는 딸과 함께 ‘ 앤디워홀의 생애를 누비’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면 더 이상의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싶기도 했다.

2. ‘앤디워홀, 현대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

  캠벨수프 모형의 매표소에서는 천경자 상설 작품을 함께 관람 할 수 있는 보너스까지 주어마음이 푸근해졌다. 아니래도 젊은 시절 천경자의 수필을 읽고, 가부장제하의 우리 현실에서 치열한 삶을 사는 여성의 전형을 본 것 같아 흐뭇하면서도 시샘이 일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다른 사람은 한 가지도 하기 어려운데 그림도 그리고, 글도 잘 쓰다니... 평일이었음에도 방학이어서 그런지 전시관은 관람객으로 적당히 붐볐다.
젊은 연인, 여자 친구끼리, 외국인끼리, 혹은 외국인과 섞인 무리, 자녀를 데리고 나온 단란한 가족들,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딸도 그들 무리에 끼어들었다.

  우선 10개의 섹션별로 전시실이 구성되었는데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전시된 작품들이 왜 그곳에 위치하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물론 대여료를 지불하는 오디오 가이드도 이용 할 수 있고, 정해진 시간에 도슨트 설명이 뒤따르기도 한다.)

  첫 섹션 주제 “앤디워홀, 현대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는 가장 보편적으로 따라 붙는 수식어인 ‘팝 아트의 거장’에 대한 앤디워홀의 미술사적인 평가를 한눈에 보여주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 팝 아트!!! ’ 가장 미국적인 매스미디어를 가장 미국적인 방법으로 담아내어 미국사회에 반영함으로써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예술의 경향성. 피카소와 브라크 이후 현대미술이 추구하던 입체주의나 추상표현주의를 거부하면서 미국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았던 미술의 표현경향이었다.

앤디워홀의 캠벨수프 깡통연작 (찌그러진, 찢겨진), 코카콜라, 달러 사인($), 꽃 연작, 브릴로 상자 등은 그냥 무심히 나열된 듯 했지만 미국 사회의 이중적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뤄 낸 대량생산체계는 부유한 사람으로부터 가난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똑 같은 캠벨 수프, 모두 똑 같은 것을 누린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일약 세계 제일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신천치(dream land)로 동경하여 마지않는 미국. 증시, 주식, 산업화, 기계화, FTA ...세계를 ‘자본’에 의해 평가되는 무한 경쟁사회로 몰아가면서 인간성을 마비시키는데 일조해 해 왔음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런데 앤디 워홀은 오히려 그 기계가 인간이 평등함을 누리도록 하고 있다는 역설을 보여 주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슈퍼스타 아이콘, 나는 헐리우드를 사랑한다.’에서는 마이클 잭슨, 은색리즈, 붉은 색 재키, 믹재거 등 대중스타들과 친분을 쌓으며 그들의 이미지들을 제작하면서 같은 사람에게 다양한 색상, 음양의 명암효과를 주어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붉은 얼굴에 붉은 바탕, 핑크빛에 노랑머리 연두계열 눈 화장과 바탕 배경, 회색 얼굴빛의 색다른 마릴린... 앤디워홀은 강렬한 원색을 쓰면서 자신이 좋아 했던 사람에게는 더 많은 다양한 색감을 사용하기도 했단다.

팩토리(Factory). 공장의 작업장에서 유명스타의 초상화를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대량 찍어 내면서 다양한 색상으로 실험을 하니 같은 인물이 마법처럼 여러 분위기를 연출한다. 잉크를 사용하여 대량복제 하는 인쇄물이니 무엇이 진품이고 복제품인지의 구분도 허물게 된다. T.V나 영화, 영상을 통해서 보았던 인물들이 마치 자주 얼굴을 부딪친 이웃인 냥 실제 잘 아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된다. 말 그대로 하늘의 별같이 요원한, 스타(star) 자체로서 보다 스타를 공유하는 대중들의 감정에 초점을 둔 듯하다

미키마우스, 뽀빠이 슈퍼맨 등 미국의 대중들이 즐기는 만화나 영화, T.V 등 대중매체의 이미지 형태를 단순화 시키고, 검고 뚜렷한 윤곽선과 말 풍선, 유치해 보이는 강렬한 원색을 미술에 접목시킨 또 다른 팝아트의 대가 로이 리히텐 슈타인. “행복한 눈물”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밝혀내야 했던 삼성 특검으로 더 유명세를 탄 그도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일상인지 구분 짓는 것을 고민 했다.

일상의 모든 것이 미술이며 누구나 미술가가 될 수 있다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미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이전부터 내려오던 예술의 경향성을 탈피하여 새로운 예술장르를 개척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앤디워홀은 마르셀 뒤샹이나 로버트 라우센버그 같은 현대 미술가들이 끊임없이 추구 해온 삶과 예술의 일치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데서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리라. 전통적인 고급예술(미술)은 작품의 소유는 물론 감상 할 수 있는 권리조차 권력과 금력을 가진 개인 혹은 왕실이나 교회 같이 기득권을 지닌 특수계층에 국한되어 왔다. 그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박제된 위엄을 허물고 일상생활 속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소재를 대중에게 제시하고 함께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미술세계의 장르를 개척한 일대 혁명사적인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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