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여름 팔월
여름 팔월은 참 짙고 아득해서 나는 그렇게 있다
이 곳엔 볕이 너무 많아 귀하지 않지 다리를 떨면서 다리를 떠는군 생각하면
서 나는 아무 건물 아무 층 아무 사무실 아무 창문 위에서 볼 수 있는 아무
블라인드와 같은, 여름 팔월의 볕 구석에 매달린 흔하고 틈 많은 사연을 내
리고 있다
조금 어두워 졌다고 믿는다 나는 조금 어두워졌고 시원해졌다는 믿음아래
있다 잠자코 검은 양산 하나를 펼쳐 나눠 쓰고 걸어가는 여자들을 본다 여
름 팔월은 아랑곳없이 나무 그늘 아래를 지나가듯 걸어가는 그들을 본다
그들을 보고 있던 그런 내가 病과 主義와 主張과 그것들의 크기 그런 것들
의 자취 그들의 미래와 후퇴에 대해 떠들어대듯 여름 팔월, 블라인드처럼 드
리워 놓은 사연들 속 그 덕분에 조금 어두워지고 시원해진 그 속에서 모든
것은 사랑이 아니겠는가
사랑 아니고서는 아닐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대꾸하듯 나는 잔광처
럼 남아 한들한들 흔들리고 검은 양산을 생각해본다 죽이고 싶다와 죽고 싶
다 사이 여름 팔월은 얼마나 많은 사랑이 넘쳐날 것인가 내려놓은 사연 뒤
편에서 나는 그렇게 되어 버리고 있다
문학과 사회 2017. 가을호
* * *
망년(忘年)?
젊은 시절 새해가 되면 다짐했던 것들,
운동을 해야지, 책을 읽어야지, 가족들과 좀더 따뜻한 시간을 보내야지...
꽃 피던 봄부터 희망이 부풀어 오른다
연록을 거쳐 신록의 여름을 맞을 때까지 푸르게 푸르게...삶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해서...
그러나 팔월을 정점으로 더위의 열기로 화르륵 불에 타 죽을까 싶어 식히기 시작해서
가라 앉히고 또 앉히고...
그래서 한 해를 잊는다면 팔월부터인가...
마침내 한 해를 보내며 뒤돌아 보는 시점에 서면 다 허망한,
' 아무 건물, 아무 층, 아무 사무실, 아무 창문에서나 보는
내려진 블라인드 같은 흔하고 틈 많은 사연들...'
나 개인으로는 특별히 잊을 것이 없고 잊지 않아도 좋다
안 좋은 기억보다 행복한 기억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또 국가 사회적으로는 매우 역동적인 해였고, 내년도 그 연장선 상에 있을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정권과 러시아 푸틴, 중국 시진핑...유럽 중남미 국가에서는 30-40대 권력자들이 등장하고
남미를 비롯하여 사회주의보다 극히 우익적인 정권들이 들어서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선진국 까지 파고든 안전지대가 없는 테러
북핵...막다른 골목까지 출구 없이 몰아 세우지만 않고 오판하지 않는다면 ...
내 개인의 문제와 달리 사회적 변혁은 오랜 시간을 요한다.
이전에 펼쳐졌던 정치사회적 관행의 관습들이 아직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어서 다소 불편한 부분은 있지만
이전 정권에 비 할바 아니고 젊은 시절 정치권으로 향하던 에너지가 크게 비중이 줄어
스트레스 정도까지는 아니기에 다행으로 여긴다.
포항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천재지변이지만...무너진 건물의 허상들
최근 제천참사에 얽힌 상식적이지 못한 일상이 어떤 결과와 사회적 희생을 가져오는지
불행하지만 아직 몇년은 더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 수능연기' 같은 즉시적 문제해결, 잘못된 관행에 대한 오류의 인정과 사회적 합의가 일부 작동하기
시작했기에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믿는다.
친일, 군부독재, 정권과 재벌의 부도덕성 청산을 위해서는 " MB 정권하에서 국가권력 사유화"에 관련한
사람들까지 책임을 묻고 그 책임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어느정도 사회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양심적으로 살아와서 오히려 피해를 봤다고 억울하게 여기는 국민들이 그 심적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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