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백상웅 고비

생게사부르 2017. 12. 23. 20:35

백상웅


고비


내 입술은 천 근, 네 발랄은 만 근.

꼭 막다른 골목까지 가봐야 멸렬의 무게를 아는 건 아니지.

아무데나 앉은 의자에 박혀 나사처럼 먹고 사는 일, 뭉개진 나사머리를 드라
이버로 돌려 빼낼 도리는 없는 일.

그늘 무거운 산 하나쯤 의자에 앉을 때
아는 얼굴이 뒤통수가 되다가
등짝이 저 멀리서 쉼표가 돼 늙어가는 것을 차마 못 볼 때 고비가 온다.

나사는 의자가 되려 한 적도 혼자 버티려고 한 적도 없다만, 너는 나는 바람
빠진 의자 같이 앉아
일 못 하는 허파가 돼서야
의자보다 나사보다 구멍이 먼저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사랑은 낯을 가리고 또 사랑은 곁눈질로 보면서
숨소리만 들었다, 살아 있으면 됐지,
그래서 뭐 어쩌겠는가.
이런 구멍들,
조일 수도 풀 수도 없이 진작 마모된 소용돌이로 박힌 삶.

의자는 나사에게 최선, 나사는 의자에게 최후.
나는 극한의 알래스카, 너는 바람 없는 암흑의 황무지.

아득한 폐에 갇힐 때,
사랑은 슬픔을 이긴다.



21세기 문학. 2017.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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