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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 아빠

생게사부르 2017. 10. 17. 01:51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아빠

 

 

 

이젠 안돼요, 더 이상은

안될 거예요. 검은 구두

전 그걸 삼십 년간이나 발처럼

신고 다녔어요. 초라하고 창백한 얼굴로,

감히 숨 한 번 쉬지도 재채기조차 못하며.

 

 

아빠, 전 아빠를 죽여야만 했었습니다.

그래볼 새도 없이 돌아가셨기 때문에요ㅡ

대리석처럼 무겁고, 神으로 가득찬 푸대자루.

샌프란시스코의 물개와

아름다운 노오쎄트 앞바다로

 

 

강남콩 같은 초록빛을 쏟아내는

변덕스러운 대서양의 岬처럼 커다란

잿빛 발가락을 하나 가진 무시무시한 彫像

전 아빠를 되찾으려고 기도드리곤 했답니다.

아, 아빠.

 

 

전쟁, 전쟁, 전쟁의

롤러로 납작하게 밀린

폴란드의 도시에서, 독일어로

하지만 그런 이름의 도시는 흔하더군요.

제 폴란드 친구는

 

 

그런 도시가 일이십 개는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전 아빠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뿌리를 내렸는지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전 결코 아빠에게 말할 수가 없었어요.

혀가 턱에 붙어버렸거든요.

 

 

혀는 가시철조망의 덫에 달라붙어 버렸어요.

전, 전, 전, 전,

전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전 독일 사람은 죄다 아빤 줄 알았어요.

그리고 독일어를 음탕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유태인처럼 칙칙폭폭 실어가는

기관차, 기관차.

유태인처럼 다카우, 아우슈비츠, 벨젠으로.

전 유태인처럼 말하기 시작했어요.

전 유태인인지도 모르겠어요.

 

 

티롤의 눈, 비엔나의 맑은 맥주는

아주 순수한 것도, 진짜도 아니에요.

제 집시系의 선조 할머니와 저의 섬뜩한 운명

그리고 저의 타로 카드 한 벌, 타로 카드 한 벌로 봐서

전 조금은 유태인일 거예요.

 

 

전 언제나 아빠를 두려워했어요.

아빠의 독일 空軍, 아빠의 딱딱한 말투.

그리고 아빠의 말쑥한 콧수염

또 아리안족의 밝은 하늘색 눈.

기갑부대원, 기갑부대원, 아, 아빠ㅡ

 

 

神이 아니라, 너무 검은색이어서

어떤 하늘도 삐걱거리며 뚫고 들어올 수 없는 十字章(卍)

어떤 여자든 파시스트를 숭배한답니다.

얼굴을 짓밟은 장화, 이 짐승

아빠 같은 짐승의 야수 같은 마음을.

 

 

아빠, 제가 가진 사진 속에선

黑板 앞에 서 계시는군요.

발 대신 턱이 갈라져 있지만

그렇다고 악마가 아닌 건 아니에요. 아니,

내 예쁜 빠알간 심장을 둘로 쪼개버린

 

 

새까만 남자가 아닌 건 아니에요.

그들이 아빠를 묻었을 때 전 열 살이었어요.

스무 살 땐 죽어서

아빠께 돌아가려고, 돌아가려고, 돌아가 보려고 했어요.

전 뼈라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침낭에서 끌어내

떨어지지 않게 아교로 붙여버렸어요.

그리고 나니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었어요.

전 아빠를 본받기 시작했어요.

고문대와 나사못을 사랑하고

 

 

'나의 투쟁'의 표정을 지닌 검은 옷의 남자를.

그리고 저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그래서, 아빠, 이제 겨우 끝났어요.

검은 전화기가 뿌리째 뽑혀져

목소리가 기어나오질 못하는군요.

 

 

만일 제가 한 남자를 죽였다면, 전 둘을 죽인 셈이에요.

자기가 아빠라고 하며, 내 피를

일년 동안 빨아마신 흡혈귀,

아니, 사실은 칠년이지만요.

아빠, 이젠 누우셔도 돼요.

 

 

아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혔어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조금도 아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들은 춤추면서 아빠를 짓밟고 있어요.

그들은 그것이 아빠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어요.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0.-1963.2.30세)의 삶

 

 

실비아 플라스는 미국의 시인이자 단편소설작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에 재능을 보였으며, 시와 함께 자전적 성격의

소설인《벨 자(The Bell Jar)》로 명성을 얻었다.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스과 결혼했고, 사후 컬트적인 명성을 얻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1932년 보스턴에서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아우렐리아 쇼버 플라스(Aurelia Schober Plath)와 보스턴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독일 그나보프출신의 오토 에밀레 플라스(Otto Emile Plath)에서 태어났다.

2년 후 부부는 1934년 아들 워렌(Warren)을 낳았다.

 

1940년 11월, 아버지 오토 플라스가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는다. 당시 당뇨병은 충분히 치료 가능한

질병이었으나, 자신의 병이 말기 폐암이라고 착각한 오토 플라스는 끝까지 치료를 거부했다.

이듬해, 아직 9세였던 실비아는 첫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8세에 이미 보스턴 헤럴드지에 시를 발표한 실비아 플라스는 적극적이고, 성적이 우수하며 특히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으로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스미스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가 영문학을 전공했다.

3학년 여름, 여성지 마드모아젤의 인턴으로 뽑혀 뉴욕시에서 지내던 중 우울증이 급격하게 심해졌다.

실비아는 인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수면제를 먹고 두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가까스로 살아난 후, 실비아 플라스는 정신병원에 잠시 입원해 당시 정신치료에 효과적이라 여겨졌던 전기충격치료를 받았다.

훗날 실비아 플라스는 이 때의 악몽같은 경험을 되살려《벨 자(The Bell Jar)》를 썼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뉸햄 칼리지(Newnham College)

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1956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학생이던 테드 휴스를 만나 그해 6월 결혼했다.

부부는 잠시 미국으로 터전을 옮겼고, 실비아 플라스는 모교 스미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1960년 부부는 영국으로 돌아가 큰딸 프리다(Frieda)를 낳았고, 실비아는 첫 시집《콜로서스(The Colossus and Other Poems)

를 출판했다. 1962년에는 아들 니콜라스(Nicholas)가 태어났다.

 

같은 해 10월, 실비아 플라스는 남편 테드 휴스가 아씨아 웨빌(Assia Wevill)과 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부부는 싸움 끝에 공식적인 별거를 선언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런던에 돌아온 플라스는 그해 말까지 잘 알려진 시 《아빠(Daddy)》와 《레이디 라자러스(Lady Lazarus)》

등 많은 시를 썼다. 1963년 1월 14일, 빅토리아 루카스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소설 《벨 자》는 호평을 받았다.

 

1963년 2월에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혹독하게 추운 날씨가 닥쳐왔다. 별거로 인한 스트레스에 추위, 독감과 생계 문제까지

겹쳐 실비아 플라스는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다.

11일 아침, 실비아 플라스는 가스를 틀어둔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했다.

일부는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는 가스가 스며들지 않도록 테이프로 치밀하게 막아두었고, 집주인에겐 의사를 불러달라는

노트를 남겨둔데다 자살 시각을 오 페어(Au Pair)가 오기로 한 시각에 맞춘 것으로 보아 정말로 목숨을 끊을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스가 새어나가는 바람에 아래층의 집주인은 의식을 잃어버렸고,

집 밖에서 기다리던 오 페어가 뒤늦게야 집으로 들어갔을 때 실비아 플라스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녀는 영국 웨스트 요크셔에 묻혔다.

 

실비아 플라스의 사후, 그녀의 글을 모아 출판하는 일은 테드 휴스에게 맡겨졌다. 테드 휴스는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실비아 플라스의 결혼생활 마지막 몇 달 동안 쓴 일기를 없앴다. 시집

《아리엘(Ariel)》를 편집하면서, 순서를 밝고 경쾌한 내용의 시로 시작하여 점차 우울하고 어두운 내용의 시로 가도록

고의적으로 배열해 비판을 받았다.

실비아와 개인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누이 올윈 휴스(Olwyn Hughes)가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테드 휴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글의 출판을 결사적으로 막기도 했다.

테드 휴스에 대한 반감이 늘어갔고, 밤사이 사람들이 실비아 플라스의 묘비에 새겨진 정식 이름, “실비아 플라스 휴스”에서

 “휴스”를 지워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69년, 테드 휴스는 다시 외도를 시작했고, 아씨아 웨빌은 테드 휴스와 사이에 태어난 딸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동반자살했다. 6년 전 실비아 플라스가 자살했을 때 방법 그대로였다.

 

 작품: 《콜로서스(Colossus and Other Poems)》 (1965) - 생전 출판된 유일한 시집.

《벨 자(The Bell Jar)》(1963) - 소설.

《아리엘(Ariel)》 (1965) - 시집.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완전판(The Unabridged Journals of Sylvia Plath)》(2000) - 캐런 K. 쿠킬(Karen K. Kukil) 편집.

《체리 부인의 부엌(Mrs.Cherry's Kitchen)》(2001) - 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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