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지웅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생게사부르 2017. 8. 7. 06:50

박지웅/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박지웅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붙어서 읽는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읽는 것이다
칠 년만에 받은 목숨
매미는 그 목을 걸고 읽는 것이다

누가 이보다 더 뜨겁게 읽을 수 있으랴
매미가 울면 그 나무는 절판된다
말리지 마라
불씨 하나 나무에 떨어졌다

 

 

 

    - 시집『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문학동네, 2012)


 

*         *         *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행위를 두고 경쟁할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매미의 그 강렬한 울음이 여름을 여름답게 실감나게도 하지만, 올해는 거의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가고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 나름 노력하며 살아 왔는데...

가능한 거리는 왠간해서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으려 노력했고,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내 손으로 잘 켜지 않고

자연 그대로에 순응하며 내 몸이 견뎌내도록 생활해 왔는데... 한계에 이르른 모양이다

 

버티다 버티다 어느 여름, 열기 많은 젊은 자식들 때문에 에어컨을 넣은지 사 오년 되었나보다

그러나 그 해에 떠난 딸 아이는 몇 년에 한번씩 오고 그나마 여름이 아닐 경우가 많고, 아들 역시 간혹 오는지라

에어컨 켤 일이 몇번 없더니 올 해는 주구장창 창문 닫고 틀었다, 끄고 창문열고를 반복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어 팔아야하는 '자본의 속성'

인간이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일도 내성이 생겨....더 편하게 더 편리하게...부채에서 선풍기로 에어컨으로

아파트나 원룸, 주택 에어컨 환풍기 하나씩 달려 있는 것은 오늘 날 우리의 풍속도가 되었다

회사 사무실에서 가정에서 차에서...인위적으로 내부를 시원하게 하는 만큼 그 열기가 다 어디로 가겠는가

나날이 나날이 지구는 더워지고...

뜨거워 지는 물속에서 죽어가는 지를 모르고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 형색이다

 

'시하늘 통신' 권 순진시인의 ' 매미'에 관한 시해설을 가져오면서 우리 역시 매미처럼 울어야함을 안다

책을 읽든지, 남여간 사람을 읽든지, 산,계곡 바다등 자연을 읽든지...

 

 

 매미 울음이 밤낮없이 맹렬하다. 쨍쨍 햇볕이 내려 쪼이고 더위가 절정에 달할수록 울음은 우렁차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라며 안도현 시인도 말했듯 여름의 초절정기에 매미 울음도 한껏 물이 올랐다. 매미의 발음 근육이 실룩거리며 만들어낸 소리를 공명실에서 증폭시킴으로써 쩌렁쩌렁 소리가 나오는데 비가 오거나 기온이 내려가면 활동이 시들해질 수밖에 없다. 매미울음의 위축은 그들 애정 전선에도 이상을 초래한다. 수컷의 울음은 암컷을 유혹하는 수단이며, 그들에겐 일생일대의 가장 화려하고 장렬한 과정이다.


  장마가 물러가고 '다행히' 연일 36도를 오르내리며 밤중에도 식지 않는 이 '대프리카'의 폭염 속에서 그들은 더욱 열정적이고 강렬하다. 매미로서는 살판났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반드시 들키려고마구 울어재끼고 있다. 평균 7년간 굼벵이 유충으로 은둔생활을 하다 지상에 올라와 우화한 뒤 매미로서 길어봐야 4주밖에 살지 못하지만 이때 대를 잇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암컷을 부르는 수컷의 울음이 처절할 수밖에 없다. 밤이고 낮이고 분별도 없다. 그러니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매미는 저렇게 울어봤자 교미가 끝나면 암컷은 나무에 알을 깐 뒤 죽고, 곧이어 수컷도 따라죽는다. 그러므로 매미에게 그 울음은 지고지순한 사랑의 시그널이다. 어차피 우리도 이 매미울음과 더불어 8월의 여름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땐 귓속 이명인지 매미소리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그 울음의 속사정을 이해한다면, 온 힘을 다해 짝을 찾는 매미의 열정을 오히려 응원하거나 연민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그러려니 해야지 오만상 찡그리며 신경쇄약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을까. 이 매미울음을 봐주지 않으면 위층에서 의자 끌어 댕기는 소소한 층간소음에도 견디지 못한다

 

  시인은 매미가 운다고 했다가 나중엔 매미가 읽는다고 했다. ‘나무의 멱살을 잡고’ ‘목을 걸고 읽는다고 했다. 그렇다. ‘누가 이보다 더 뜨겁게 읽을 수 있으랴누가 이토록 겁나게 치열하게 바락바락 생을 읽겠는가. 그렇게 울어쌓는데 나무가 절판되지 않고 어찌 배길 수 있으랴. 함민복 시인은 매미의 땅속 삶을 사람 눈으로 어둡게만 보지 말자’ ‘고작 칠십년을 살려고 우리는 없던 우리를 얼마나 살아왔던가라고 했듯이 따지고 보면 사람이나 매미나 목을 거는 삶은 매한가지다. 그 불씨 일단 나무에 붙었다 하면 기어이 다 읽고 다 태우고 만다. 8월에 이만한 흥행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절판은 되어도 결코 절단이 나진 않을 것이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