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맨드라미 손목을 잡고 내가 말을 잃고 고양이처럼 울 때 맨드라미 흰 손목에 그어지던 햇살 칼자국처럼 가늘고 창백했다 내가 골목 끝에 이르러 지나친 집의 주소를 잃고 떠 다닐 때 맨드라미 손목 붉은피 핥으며 살았다 나 그렇게 견뎠다 녹슬어 가는 자전거와 골목사이 공터에서 맨드라미 손목은 울음 같았고 혼자 그네를 밀고 있는 기다림은 살을 입고 피가 도는지 한없이 붉어지고 붉은 둘레를 걸어다니며 나 오직 먼지가 되기 위하여 맨드라미 뿌리에 닿기 위하여 폐관하는 저녁 저 물속 어디쯤 내가 떠나 온 자리라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이제 그만 잠들고 싶다고 굳게 입을 다무는 집 화단처럼 깊어만 지네 1965. 경북 상주 1997. ' 집에오니 집이'없고 1999.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 * * 이 시인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