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 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뻑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호랑이/ 김기택 길고 느린 하품과 게으른 표정 속에 숨어 있는 눈 풀잎을 스치는 바람과 발자국을 빈틈없이 잡아내는 귀 코 앞을 지나가는 먹이를 보고도 호랑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위장을 둘러 싼 잠은 무거울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