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 /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 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 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브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허밍, 허밍 해 질녘 저 밭은 무엇인가 해질녘 저 흐릿한 논길은 해질녘 밭둑을 돌아 학교에서 돌아오는 거미 같은 저 애 들은 무엇인가 긴 수숫대 매양 슬픈 뜸부기 울음 해 질녘 통통통 경운기의 짐칸에 실려가는 저 텅빈 아낙네들은 무엇인가 헛기침을 하며 걸어 오는 저 굽은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