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기림 길

생게사부르 2018. 6. 25. 07:45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젓 때없이
그 길을 넘어 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 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김기림(金起林, 1908년 5월 11일 ~ ?)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본명은 김인손(金仁孫)이며, 편석촌(片石村)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였다
함경북도 성진시1908년 5월 11일출생이며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불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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