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굽/ 허형만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었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 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 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 없이 궁금했다
* * *
6.10일 ' 민주 항쟁 기념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달력에 적힌 기념일 만으로도 역사공부가 되는데...
'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걸음걸이 습관이 달라 닳아진 구두 뒷굽 가는데도
' 좌빨이니 우빨이니' 신경 썼어야 할 시인의 속내가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의 일을 우리끼리 해결할 수 없는 ...작은 나라라는게
원래 분단이 될 때도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지만요.
이렇든 저렇든 북한이 '장막'에서 걸어 나오기로 이왕 맘 먹은 것, 좋은 결과를 가져와 우리나라서 더 이상
좌빨 우빨로 패가르지 않았음 좋겠네요.
' 인간 개인개인이 일정 수준 도덕성을 갖추고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을 지니고 실천하면서 살면
무정부라도 괜찮을 것 같았던 젊은 시절
대책없는 자유주의자에 어떤 면에선 아나키스트?였기에 ' 집단이나 조직에 속해 그 규율을 따라야 한다는 건
체질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런 성향을 가진 내가 별정직이라곤 하나' 공무원'이 되었으니...
(일반인들이 법계열의 판,검사 같은 직업처럼 교사를 특별히 별정직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대학 나오면 대충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
조상님들 고향이 남쪽이고 특별히 사회주의 운동을 할 정도의 지식인 조상도 없었습니다.
부농도 아니었고 그만저만 농사 짓고 살던 집이었는데 6남매 중 특별히 백부님과 친정 아버지께서 공부욕심이 좀
있으셨던 듯 합니다. 백부님은 집안의 장남이라 땅뙈기를 일부 팔아서라도 공부 뒷바라지가 된 셈이지만 아버지는
맏형인 백부께서 데리고 있으면서 공부를 시키신 셈인데...
만족할만큼 공부를 못 마쳐서 늘 학업에 아쉬움과 갈증을 지녀셨던 것 같습니다.
어떻든 극히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과 합리적인 행동양식의 교사라고 생각해서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데 다른
사람 보기에' 빨갱이 교사' 였는지 모르겠습니다. ' 좌빨요'
개인적으로는 개성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또 집단, 특히 성장기 학생들을 교육집단이어서
모든 조건을 철저하게 평등하고 공정한 교육지도에 치중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 뒷받침하는 집안 배경이 어떻든... 철저하게 학생 본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따른 책임, 자기 이익이나 편리를 위해 다른학생에게 피해 주는 일 등에 대해
원래 자유로운 영혼이고 조직에 속해서 규율 같은 걸 따라야 한다든가 하는 거 천성적으로 잘 못 합니다
그럼에도 다른 대안이 없고 나아가야 할 교육의 방향이 그러했기에 1989년 ' 전교조 조합원' 이 되었습니다.
전교조 관련해서 기사나 댓글 등 간접적으로 ' 빨갱이' 니 ' 좌빨' 이니 욕을 먹기도 했지만 직접적으로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1989년 여중서 3학년 담임할 때 입시가 끝난 2월, 막 수업이 끝 났는데 급한 볼 일이있던지 교감샘이 직접
학급에 올라 왔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성계 위화도 회군에 대해 학생이 쓴 시를 소개했는데 칠판에 적혀 있는걸 얼핏 보셨는지
아니면 온 촉을 세우고 관찰 내지는 감시를 하셨는지
나중에 교무실로 부르더니... 아주 큰 일 이라는 듯... 학부형 한테 항의 전화가 왔다고 했습니다.
요점은 ' 아직도 그런 빨갱이 교사가 교단에 서느냐' 는 거였지요?
전후 사정을 볼 때 좀 미심 쩍었습니다. 그 날 그 시를 처음 소개했는데 아직 아이들이 하교하지 않았기에
제 짐작으로 교감이 넘겨짚기 한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항의한 학부모가 어느 반이냐 만 물었는데
' 그건 알 것 없고...'
' 그러면 저도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실명을 밝혀도 그렇지 교사 학습권 침해인데...
어느반 학부모인지도 못 밝히면 아닌 말로 교감샘이 학부모 핑게 대시는 지 알 수가 없잖습니까?'
아무 말씀 못 하시고.... 그렇게 마무리 되어 넘어 갔습니다.
신원조회 다 하고 교사로 임용됐는데 " 빨갱이라니 ..."
그러나 일부 전교조 교사들 중에는 소송이 걸려 고초를 겪은 분들이 다수 있습니다.
칠판에 적혀 있던 시는 어느 고등학생이 썼던 역사시 였습는데
내용은 '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으로 당시 친원파이던 최영을 몰아내고 정치 군사권을 장악하고 경제권을 장악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 관련 된 시였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주도세력 입장에서는 피 흘리지 않고 성씨만 바뀐 ' 역성혁명'으로 정당화하지만 ' 군사쿠데타 ' 라는
주제의 시였다고 기억합니다
그런 소재가 나오면 ' 왕정' ' 군주정' ' 공화정' 같은 걸 구분 하고
' 성공하면 혁명이요, 실패하면 쿠데타' 라는 왜곡된 개념에 대한 토의를 통해 ' 혁명'과 ' 쿠데타' 의 차이가 뭔지
어렴풋이라도 알게 됩니다. 아직 중학생이니까요.
전교조 결성 후 지역마다 교육관료들과 교사들이 ' 교육 민주화' 과정에서 서로 대립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김옥길 문교부(교육부 장관)이 중고등학생 교복자율화를 시행했던 시기였음에도 그 지역에서는 교장들이
담합해서 업자들과 결탁하고 아이들 교복주문을 반 강제하고 있었습니다.
' 교장 월례회' 에서 통영은 관광지이니 술집이나 다방 아가씨들과 구분하기 위해 교복을 입혀야 한다는 그들의
대화가 알려져 교장들이 무지 욕을 먹기도 했지요.
14 - 16세 여중생을 대상으로 그런 비유를 했다고요
교사들이 타협안으로 그러면 희망하는 학생만 맞추기로 하자고 결정이 되었는데 관리자들이 강제를 하는 겁니다.
어느반은 왜 희망자가 적으냐? 학급 담임교사를 불러 추궁하고...
(그 당시 교복값이 만만찮았기 때문에 교복 맞추는 게 부담이 되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결국 일이 터져서 학교장과 전교조 교사간 충돌이 일어 나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교사들은 수업하랴 업무보랴 그 바쁜 와중에 빈 시간이면 한명씩 교장실로 불려 내려갔는데...
지역에서 행사께나 한다는 학부모들(육성회 등)을 동원해서 교사들을 닥달을 했습니다.
당연하게 저도 불려 내려갔는데 제가 만난 학부모 한 분
' 교복 그거 몇 푼 한다고 그걸 못 사 입어요?
' 어머님은 자녀만 생각하면 되지만 저희는 학급 학생 모두 입장을 살펴야 해서 그렇습니다.
형편 어려운 애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
'우리나라가 빨갱이 나라도 아니고, 그런 책임감 없는 무능력한 학부모 어쩌고 저쩌고.... '
빨갱이 나라가 아니라 교복도 형편따라 자유롭게 입을 수도 있지
지금은 운영위원회로 바뀌었습니다만...그 당시 학교에 드나들면서 치마바람깨나 일으키던 분들 어쩌면 하
나 같이 담임교사 편(?) 아니고 학교장 편이든지...
일단 북미회담의 결과가 좋으면 좋겠습니다.
선거가 다음 주네요.
남북이 자기들 정권유지 하자고 국민들을 더 이상 볼모로 잡거나 희생시키지 않기를,
해서 ' 좌빨, 우빨' 이 아니라 정책 노선과 공약 그 실천으로 국민을 잘 살게 해 주는 정치인 풍토가
자리 잡기를... 저 부터 정치인들 ' 불신' 합니다. '냉소'하기도 하고요
'혐오' 까지 가기 전에...우리도 존경하는 정치인들이 넘쳐나는 국가가 되면 좋겠지요.
여전히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이상주의자의 꿈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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