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싸움 / 허영숙 느티나무 그늘을 펴놓고 할머니 여럿 둘러앉아 꽃싸움을 한다 선이 된 사람이 꽃잎 몇장을 깐다 손 끝에서 매화가 피고 모란이 피고 국화가 피고 새가 울고 달이 뜨니 창포도 한꽃대 밀어올린다 거듭 나는 열 두달 주름의 행간으로 스민 생의 사계가 저 곳에 있다 꽃등만 보고도 꽃말을 맞추는 나이 패를 들켜도 두려울 것이 없다 빛날 광에 목숨 걸지 않아 단풍 든 시절이 한참 지난 저 싸움엔 패자도 없다 꽃 필 때마다 웃음도 그늘로 거느리고 있는 느티나무 심판관 꽃값을 대신 읽어 줘서 하늘하늘 즐겁다 꽃잎끼리 부딪칠 때마다 씨방에서 터지는 꽃 웃음 다시 꽃을 볼 수 있을 까 조심스레 마지막 꽃잎을 꺼내는 손 끝에 바람도 긴장한다 꺼내 놓을 패가 없어 뒤집을 것도 없지만 눈 부시게 피던 시절을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