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세계/ 김희준 소나기가 지난다 당신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을 나열하는 취미를 가졌다 책냄새를 달가워하지 않는 벌레가 낡은 책갈피를 덮는다 서점엔 괜찮다가도 괜찮지 않은 책들이 오르내린다 책장은 만들어지고 가구점에선 나무가 제 생을 다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내 자리 한칸 없다는 사실이 나를 밤으로 내몬다 과일가게에선 늙은 사과가 굴러 다니고 그해 블랙홀은 가운데가 뚫린 모양이라는 기사를 본다 그러면 우리에겐 서로의 심장 이 있다가도 사라지곤 했다 나는 사과를 먹었다가도 다시 뱉어내고 괜찮다가도 괜찮지 않아질 수 있었다 속성을 반복하는 것이 당신의 이름이라면 우린 자라면서 자라지 않는 측백나무 길을 산책로 삼았을 것이다 내리면서 내리지 않는 비를 맞으며 맨발로 걷다가 발에 밟힌 개미를 죽이면서 죽이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