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운다 / 최금진 가난한 사람들의 아파트엔 싸움이 많다 건너뛰면 가닿을 것 같은 집집마다 형광등 눈밑이 검고 핼쑥하다 누군가는 죽여달라고 외치고 또 누구는 실제로 칼로 목을 긋기도 한다 밤이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유체이탈한 영혼들처럼 기다란 복도에 나와 열대야 속에 멍하니 앉아 있다 여자들은 남자처럼 힘이 세어지고 눈빛에선 쇳소리가 울린다 대개는 이유도 없는 적개심으로 술을 마시고 까닭도 없이 제마누라와 애들을 팬다 아침에는 십팔평 칸칸의 집들이 밤새 욕설처럼 뱉어낸 악몽을 열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 운명도 팔자도 모르는 화단의 꽃들은 표정이 없다 동네를 떠나는 이들은 정해져 있다 전보다 조금 더 살림을 말아먹은 아내와 그들을 자식으로 두고 죽은 노인들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교과서를 족보책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