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 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 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