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커니/박남희 무 밭에 이르러 나를 우두커니 세워두고 무가 되었다 이파리만 푸르고 희디흰 몸은 맵거나 달았다 무는 뿌리로 말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으므로 나는 뿌리를 키웠다 이상하게도 뿌리 위로 이파리가 무성해져갔다 이파리에 무꽃이 달리고 나비가 날아들었을 때에야 그리운 허공이 나비가 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래전무터 허공이 무를 키우고 무의 이파리들이 허공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무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닌다는 것도 알았다 그때까지 무의 속살은 연하고 부드러웠지만 무꽃에 씨앗이 영글고 나비가 사라질 때쯤이면 무의 속살에 단단한 심지가 박힌다는 것은 무 자신도 잘 모르고 있었다 나는 요즘 나를 우두커니 세워두고 연하게 해방시키곤 한다 그러면 날아갔던 나비가 다시 날아오고 사그라졌던 꽃 대궁이 푸르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