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투구꽃을 생각함/문성해 시 한 줄 쓰려고 저녁을 일찍 먹고 설거지를 하고 설치는 아이들을 닦달하여 잠자리로 보내고 시 한 줄 쓰려고 아파트 베란다에 붙어 우는 늦여름 매미와 찌르레기 소리를 멀리 쫓아내버리고 시 한 줄 쓰려고 먼 남녘의 고향집 전화도 대충 끊고 그 곳 일가붙이의 참담한 소식도 떨궈 내고 시 한 줄 쓰려고 바닥을 치는 통장 잔고와 세금독촉장들도 머리에서 짐짓 물리치고 시 한 줄 쓰려고 오늘 아침 문득 생각난 각시투구꽃의 모양이 새초롬하고 정갈한 각시 같다는 것과 맹독성인 이 꽃을 진통제로 사용했다는 보고서를 떠올리고 시 한 줄 쓰려고 난데없이 우리 집 창으로 뛰쳐 들어온 섬서구 메뚜기 한 마리가 어쩌면 시가 될 순 없을까 구차한 생각을 하다가 그 틈을 타고 쳐들어온 윗집의 뽕짝 노래를 ..